이즈음 틈나는 대로 묵자(墨子)에 빠져 지낸다. 예수쟁이라면 한번은 깊게 맘 담구어 마땅한 큰 못이라는 생각이다. 기세춘(奇世春)선생님과 문익환, 홍근수 목사님이 남기신 묵자에 대한 해설은 그 못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쉽고 간결하기로는 신영복선생님의 ‘강의’인데, 묵자에 대한 언급이 지나치게 부분적이고 짧아 아쉽다. 아무튼 신영복선생님의 가르침 하나.
<성공회대 정보과학관 휴게실에 ‘겸치별란兼治別亂’ 이란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내가 쓴 글씨입니다. 겸애하면 평화롭고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며 물론 묵자의 글에서 성구(成句)한 것입니다.
묵자의 겸(兼)은 유가의 별(別)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 별(別)이야말로 공동체적 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악이라는 것이지요. 나와 남의 차별에서 시작하여 계급과 계급, 지역과 지역, 집단과 집단과의 차별로 확대되는 것이지요. 가(家)와 가, 국(國)과 국의 쟁투가 그것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해악이 바로 서로 차별하는 교벌자(交別者)라고 묵자는 주장합니다.
조금 전에도 예시문을 들어 소개했듯이 “큰 나라가 약소국을 공격하고, 큰 가(家)가 작은 가를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간사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신분이 높은 자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2500여년 전 옛사람이 오늘의 뉴스들을 보며 던진 말씀 같다는 생각에.
내 뜰엔 마지막 여름 꽃이 자태를 뽐내고.
어른들의 말씀과 꽃의 아름다움은 늘 곁에 있다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잊고 지내다 어느 한 순간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