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때 한 번, 어머니 때 두 번, 아버지 덕에 또 한 번. 네 군데 서로 다른 노인 재활원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운도 참 좋으시다. 네 군데 중 시설이나 분위기나 환자의 느낌과 반응 모두 가장 좋다. 엿새 만에 병원에서 재활원으로 옮기신 아버지의 회복 속도는 놀랄만치 빠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 철저한 자신의 몸 관리,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그 속도를 더하는 듯하다.
허나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속은 그저 애틋하다.
늦은 밤, 이즈음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의 ‘역사적 예수 The Historical Jesus’ 속 글귀 하나를 넘기지 못하고 오랜 동안 곱씹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미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통찰력이 아니라 현존하는 그 나라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 오늘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는 이들의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라는 크로산(Crossan)의 사족(蛇足)은 오늘 밤 내게 절대적으로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