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 수도꼭지를 바꾸려고 손을 대다보니 연결된 동파이프 까지 바꾸어야 될 듯 하였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자신 없는 일이기도 하여 전기와 배관은 가게서나 집에서나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다.
내일 배관공을 불러야겠다는 생각 끝에 떠오른 K였다. K는 거의 스무 해 가까이 내 세탁소의 모든 기계들을 잘 돌보아 준 기술자이다. 두 해 전에 세탁소 자리를 옮길 때 그가 해낸 몫이 거의 80% 정도였으리 만큼 내 세탁소 장비와 시설은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사는 남부 뉴저지에서 내 가게까지는 약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데 기계나 장비에 문제가 있어 내가 전화를 걸면 그는 일단 내 이야기를 들은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판단해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는 아주 상세한 설명으로 하나, 둘 , 셋… 하면서 순서대로 처리하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알려 주곤 한다. 물론 무보수다.
‘에이고, 그건 사장님이 손 델 수 없겠네요!”하면 그는 한 시간 지나지 않아 내 가게에 도착하거나, 지금 바쁘니 언제 들릴 수 있다고 말하고, 딱 그 시간이면 내 가게로 오곤 한다. 어쩌다 몇 시간씩 일을 하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면 그는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고마워 나는 단 한번도 그가 요구하는 금액에 토를 단 적이 없다.
그와 최근에 전화 통화를 한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그가 문안인사라며 걸어 온 전화였다. ‘어떻게 지내세요? 에이고 힘드네요. 뭐 일이 있어야지요. 어쩌다 일해주면 돈도 잘 안 주고요. 체크 받으면 빵구나기 일수고요. 이 일도 이젠 막장인가 보내요.’ 그 때 내가 한 말이다. ‘뭐 여태 살았는데… 올 여름 지나면 나아질게야. 함 보자구.’
그렇게 떠오른 K였다. 동네 배관공을 부르기 보다 그가 시간 나면 맡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그의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일요일이어서 전화를 받지 않는가 보다 하였다.
한 두어 시간 지났을까? 뒷뜰에 여름 구근 들을 심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구 일요일에 쉬는데 전화해서 미안하고만…’하는 내 소리에 대한 그의 응답이었다. ‘이제 없어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내가 뱉은 소리. ‘아 이 사람아, 나 몰라? 델라웨어 김이야!’ 그러자 돌아 온 응답. ‘아빠 이제 없어요. 저 아들이예요. 아빠 이제 없어요. 아주 갔어요.’ 목소리는 분명 K였는데 띄엄 띄엄 어눌한 한국말, 그의 아들이었다.
찬찬히 그의 아들을 통해 들은 K에 대한 소식이었다. 지난 월요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그가 세상을 떴고 어제 그의 장례를 치루었단다.
초등학교 때 아빠 따라 내 가게에 왔던 아이는 지금 군복무 중이란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게 서있다 오늘 뜰 일을 접었다.
달 포 전 들었던 오랜 벗 H의 죽음이 떠올랐다. H는 나이 쉬흔을 맞을 무렵 마라톤 완주에 도전했었고, 네 차례에 걸쳐 완주 했었다.
오래 전 그가 처음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러 워싱톤으로 내려가면서 휴게실에서 써서 부친 손편지가 내게 도착한 것은 완주 후의 일이었다.
그 때 그가 썻던 글이다. ‘김형, 지금 나는 두렵습니다. 그래도 나는 끝내 완주할 것입니다.’
K는 이제 막 육십, H는 칠십을 몇 달 앞 두고 그들의 마라톤 완주를 끝내었다.
제 아무리 멋진 말들과 종교적 언사로 치장하여도 가까웠던 이들의 죽음은 섧다.
제 아무리 완주여도… 내게…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