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사뭇 길다. 저녁상 물리고 뒤뜰에 한동안 맥없이 앉아 있어도 저물지 않는다. 어미가 아이들을 부르는지 아님 아이들이 어미를 찾는지, 누군가를 찾는 저녁 새소리에 생각이 잠시 내 어릴 적 옛날로 돌아갔다 오곤 한다. 하늘엔 비행기들이 긴 발자국 남기고 연이어 날아간다. 매일 저녁 그렇게 날아갈 듯 한데 나는 마치 처음 본 일인 양 신기해 한다.
배우 윤여정에 대한 뉴스를 본 때문인지 생각이 한 동안 1970년대로 돌아가 맴돈다. 돌아볼수록 내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스물 나이라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세월에 대한 추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무렵에 만나고 배웠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정말 아름답게 새겨야 마땅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뭘 알았겠나. 반독재, 민주, 평화, 통일, 인권, 평등, 해방 등등 차마 감당 못할 거창한 구호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인데, 돌이켜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게 그리 거창할 것도 없는 그저 만나고 생각하는 사람들 끼리 서로 사람 대접하며 사는 세상 꿈꾸는 일. 일컬어 하나님 나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시간이 흘러 이제 2021년, 그 때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은 이미 세상을 뜨셨고, 또래 친구들 역시 이젠 사람 보다는 신(神 ) 또는 자연의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릴 나이들이 되었다.
왈, 반세기만에 세상은 참 많이 좋아졌다. 배우 윤여정의 뉴스로 그것을 다시 확인한다.
팔자라기도 하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들은 신의 뜻이라고도 하더라만, 그게 다 사람이 저 자신도 모르게 제 할 일 다 하고 난 뒤에 다다른 세상이 아닐까?
날아가는 비행기 꼬리는 길지만 사라지는 것 또한 순간이다. 허나 아름다움으로 남는 것은 사라진 긴 꼬리 뿐이다.
배우 윤여정이 삶의 허기로 만든 오늘의 뉴스를 보며, 1970년대 그 시절 벗들과 선후배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 그 꿈 외롭게 간직하며 사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해가 사뭇 긴 탓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