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뒷뜰 언덕배미 대나무 숲을 베어낸 지 두 해 째. 대나무 뿌리는 여전히 땅속에서도 푸른 대에게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대나무 뿌리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숱한 비법과 사례들을 구글과 유튜브를 읽고 보곤 하였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많지 않았다.

하여 조금 긴 호흡으로 마음 다잡으며 실로 무지하게 맨땅에 헤딩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삽과 곡괭이 들고 뿌리를 들어내는 일을 시작하자 마자 ‘아차!’ 싶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내딛은 걸음인지라 갈 데 갈지 가보자고 삽질을 잇는다.

대나무 뿌리는 아주 견고한 동맹으로 이어져 있다. 그 뿌리들의 연결 고리를 끊어 캐내는 일을 마치기 전에 내 어깨와 팔이 먼저 지쳐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일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긴 싸움으로 가자고 맘 먹었으니, 비록 나도 이제 노년의 초입이지만 대나무 뿌리는 이길 수 있으리라.

군데군데 대나무 뿌리들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어 부근의 땅을 한바탕 엎어 들어낸 후, 내 가게에 넘쳐나는 종이상자를 깔고, 그 위에 새 흙을 덮어 내가 가꿀 수 있는 아주 작은 새 세상들을 만들어 본다.

대나무 뿌리를 거두어 낸 새 세상에 야채와 화초 씨와 모종을 심어 가꾸어 보는 일인데, 그 삽질이 만만치 않다.

허리와 어깨 두드리며 내게 넘쳐나는 감사하는 맘 두 가지.

큰 나무들은 아직 내가 격어보지 않아 모를 일이지만, 야채나 화초들은 고작 몇 인치 정도의 흙을 파면 잘 자랄 수 있거니와, 대나무 뿌리라고 해 보았자 그 역시 일 피트만 파면 끝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감사가 첫째인데, 감사의 까닭은 신은 그리 깊은 곳에 진리를 묻어 놓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

또 하나의 감사는 이 나이에 흙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언젠가 내가 될 흙과 미리 벗이 되어 지내는 시간들에  대한 이 큰 감사라니.

하여 내가 마땅히 없애려 하는 대나무 뿌리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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