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어 장사에 일정한 순환 원칙이 무너진 지 오래 되었다만, 내 생업인 세탁업은 여전히 날씨에 따라 그 날의 매상이 널을 뛰곤 한다. 하여 날씨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그렇다 하여도 일기예보를 매일 들여다 볼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날의 일기 예보는 물론이요, 한 주간의 날씨 나아가 한 달 예보까지 들여다보기 일쑤이고, 때론 시간대 별 예보까지 챙기기도 한다. 물론 내 생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생긴 습관이다.
얼치기라면 차라리 중간이라도 가는 법이지만, 이건 생짜 초보가 마구잡이로 땅을 헤집어 놓는 형국이라 하늘과 땅의 흐름에 귀라도 기울여야 마땅하다는 생각 때문에 이리 되었다.
유튜브나 구글신이 가르쳐 주는 것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수 많다만, 따지고 보면 모든 결과는 오로지 나에게 달린 일이어서 매사 겁 많고 생각 많은 내가 쳐다보는 것이 하늘이 되었다.
손바닥 만한 채마밭과 화초밭 가꾸는 일에 이리 소심한데도, 이 나이까지 이만큼 산 것은 모두 내가 믿는 신(神) 덕이다. 이 덕담 만큼은 살아있는 한 부끄럽지 아니 할 일이다.
못된 내 성정이 늘 그래왔듯,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 없다. 그저 흙을 뒤엎고, 새 흙을 섞어 내 뜻대로 고른 그 한 뼘 땅 위에 싹을 틔우고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그 지속되는 순간 순간들 속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해 보자는 내 욕심에 충실할 뿐이다. 그 욕심 속에서 문득 문득 마주하는 신(神)을 만나는 기쁨이라니. 하여 하늘을 본다.
화초와 채마는 욕심을 부려도 그리 후회될 리 크게 없을 듯 하여 마구잡이로 용기를 내었다만, 아직 나무는 이른 것 같아 올해는 화분에 작은 묘묙들을 키워 볼 요량이다.
그렇게 오늘 오후에 흙을 만지며 스쳐 간 생각 하나.
신(神)은 믿어야 할 나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향해 묻고 있는 그의 뜻을 헤아려야 할 물음 – 바로 그 물음 자체일 수도.
날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