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Alfred), 이 양반은 내 오랜 단골이지만 좀 골 아픈 손님이다. 그가 가지고 오는 세탁물이란 언제나 정장 예비군복 한 벌, 아니 대개는 바지 하나인데 늘 당일 아니면 이튿날 찾겠노라 한다. 지난 이십 수 년 간 한결같다. 여기까지야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올 때 마다 우리 내외의 시간을 턱없이 많이 빼앗곤 하기에 골 아프다. 그것도 매양 한가지 이야기로 그리 한다. 바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다. 보다 정확하게 하자면 한국에 대한 그의 기억들이다.
그는 늘 한국전쟁 참전 기념 모자를 쓰고 다닌다. 아직도 걸음걸이가 꼿꼿하여 그가 칠십 년 전에 있었던 한국전쟁에 파병 되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허나 나이는 숨길 수 없어 최근 몇 년 이래 청력도 많이 잃었고, 정신도 이따금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모습 하나가 우리 부부를 만나기만 하면 이어지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그의 칠십 년 전 사진들을 많이도 보았으므로, 그의 기억을 탓하지는 않는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가게 카운터 옆 벽면에 걸어 놓은 내 가족 사진들 가운데 아내와 딸이 함께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가 물었다. “여기가 한국의 어디니? 내가 한국에 있을 땐 …” 나는 그의 말을 급히 잘랐다. “거긴 한국 아니고요. 뉴욕주에 있는 Minnewaska State Park에서 지지난 가을에 찍은 거고요. 저도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 되어서요… 오늘 맡기신 제복 내일 찾아 가시려면 제가 일을 해야되서요…” 그렇게 그를 내어밀 듯 인사를 끝내었다.
칠십 년 전 한국에 대한 기억으로 한국을 이야기하는 알프레드나 일천 구백 칠십 년 대를 위주로 한국을 기억하는 내게나 오늘날의 한국은 그야말로 외국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의 파편 속에 남아 있는 내 모습이 피할 수 없는 나의 단면이듯, 알프레드와 내 기억 속 한국 역시 오늘날의 한국 모습에 닿아 있을 게다.
늘 절박하고 간절한 것은 ‘오늘 그리고 여기’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어제 그리고 거기’와 연결되어 있다.
알프레드(Alfred), 그를 성급히 내어 밀어 낸 미안함으로.
이즈음 내 일터 아침은 내일을 꿈꾸는 부근 건설 노동자들이 열고 있다. 내 옛 세탁소 자리를 밀어낸 터 위에서.
기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