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응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들이 겨울이라고 우긴다. 허긴 내가 바깥 일 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부지런한 농부는 아니므로.

내 직업인 세탁소에 봄은 부활절 즈음에 찾아오니 아직 이르긴 하여도 그래도 경칩(驚蟄)이 지났는데, 아무렴 봄이다.

바깥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으로 내 방안 봄맞이 준비를 하다가 만난 시인 윤동주의 동시집이다. 윤동주의 동시집이 내 방에 꽂혀 있는 줄 모르다 만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1999년에 도서출판 <푸른 책들>에서  펴낸 시집이다. 아마도 2000년을 맞는 그 무렵에 뉴욕 서점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에 혹해 내 방으로 모셔 온 시집이었을 듯. 내 방안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미안하고, 오늘 시집의 책장을 넘기다 힘을 얻어 고맙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 전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했던, 아직도 어수선한 그 길에서 너나없이 모두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은 어쩌면 여전히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이는 길 일게다.

그럼에도 내가 만나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아무렴!

하여 흉내일지언정 모종판에 흙을.

새 봄, 새로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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