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은 봄날 아침이었다. 이상 기온이 아니라면 다시 겨울을 맞기까지 서리는 내리지 않을 것이지만, 언제 이상기온을 맞지 않을 때가 있었던가 싶다. 이즈음엔 더더욱.

텃밭농사 흉내에 재미 들려 이즈음 틈나면 작은 밭을 일군다. 오늘 첫 작물로 콩과 감자를 심었다. 먹을 거리로 생각하면 평소 소식(小食)인 우리 두 내외에겐 농사보단 사 먹는 것이 몇 배는 경제적일 것이다만, 재미란 경제논리와는 무관한 것일게다.

이즈음에 탐닉하고 있는 맛도 따지고 보면 그 재미 때문이다. 우연히 만들어 본 무장아찌 맛에 홀려 한 달 여, 매 끼니 함께 했다. 옛날 옛날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무장아찌 몇 젓가락으로 찬 밥 물에 말아 훌훌 넘기던 그 옛 생각 맛에 홀린 탓일게다.

아무렴, 사는 일이란 늘 진일보 하는 법. 양파, 샐러리, 파프리카, 당근, 고추 등속을 저며 달인 간장으로 장아찌를 담다.

완연한 봄날 오후를 맞아 어머니와 장모 장인에게 모처럼 문안 인사 드리다. 부활절을 맞는 장식들 중에 바람개비들이 눈길을 끌었다. 부활절과 바람개비. 이런 저런 저마다의 우김질들로 세상은 늘 시끌벅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동서남북 어디에나 사람들 욕망은 늘 같다.

아내가 “이것 좀 봐!”라며 가르킨 어느 묘비명이었다. <LIVED AND LOVED WITHOUT HESITATION>

해 아래 그 어떤 삶이 제 맘껏 게다가 받을 사랑 다 받고 살다 간 사람이 있겠냐마는, 스스로를 그런 모습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마지막 순간을 맞은 사람에게 그렇게 그를 기억하며 남아 있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봄날엔 찬 밥 한덩이 물에 말아 변변한 건건이 없이 장아찌 하나 얹어 훌훌 넘기는 한 끼도 감사다. 맘껏 살아보고 맘껏 사랑받는 시간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계절의 시작임으로. 겨울의 기억과 함께.

비록 바람 따라 도는 바람개비 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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