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른 아침에 가죽옷 세탁 배달원이 배달을 와서 하는 말. ‘김씨, 난 아직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우…’
‘뭘?’ 내 물음에 이어진 그의 응답이다. ‘왜들 문들을 안 닫고 버티는지? 어떻게들 견디는지? 그게 궁금하다니까? 내가 팬데믹 전에 한주 동안 걷어 들이던 세탁물의 절반을 두 주나 되어야 겨우 채우거나 그도 못하거나 한다우. 어떻게들 견디는지 난 정말 이해를 못한다우.’
얼마 후, 코트 한 벌 맡기고 내 세탁소를 나서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말씀. ‘참 고맙다우, 문 닫지 않고 이렇게 계속 영업해 주어서…’
그리고 점심 무렵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 오랜 단골 Linda가 봉투 하나를 카운터에 놓으며 손가락을 자기 입에 대고 ‘쉬잇’하면서 내게 건넨 말. ‘네가 어제 보낸 주말 편지 읽고, 이건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내가 눈 치우는 거 도와줄게.’ 그는 다시 ‘쉬잇’하면서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빠이’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그가 놓고 간 봉투에는 제법 큰 돈이 들어 있었다.
사연인즉, 습관적으로 매 주일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는데 어제 아침엔 우리네 명절인 설날 인사와 함께, 올핸 눈이 많이 와서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많다는 이야기들도 전했었다. 팬데믹으로 장사도 잘 안되는데 눈이 많이 오면 눈 치우는 경비도 샤핑 센터 입주자들이 1/n로 감당하는 것이라 그도 만만치 않아 걱정을 더한다는 넋두리도 이어 놓았었다. 물론 건물주가 렌트를 삭감해 주어서 견딜 만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필라 인근 한인들을 중심으로 한 설날 치유음악회에 대한 소식도 전했었다.
올 겨울 눈치우는 경비는 충분히 감당할 돈을 놓고 간 Linda에게 전화를 걸어 ‘너의 우정이 너무 고맙긴한데…이건 우리가 받기엔 너무 과하다…’는 아내의 인사에 그녀가 한 말. ‘솔직히 펜데믹 이후에 내 장사가 잘 되고 있단다. 그래서 팬데믹으로 장사가 안되는 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도 있고…. 너희 세탁소는 늘 거기 있어야지.’
2.
어제 필라 <우리센터>에서 주관해 이루어진 온라인 줌을 통한 음악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환경의 변화란 그저 잠시 불편한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힐링음악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행사였다. 솔직히 나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엔 그리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뜬금없이 유행하여 숱한 이들을 혹하다가 사라져버리는 유행어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치유란 결코 호들갑스러운 말이 아니다. 자기를 만나는 일, 삶을 느끼는 일, 이웃을 이해하는 일 사이에서 만나는 감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치유라는 생각이다.
어제 행사는 그래서 좋았다. 우리 소리여서 좋았고, 우리와 다른 공동체들이 녹여온 서로 다른 소리들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들이 좋았고, 그 소리와 몸짓을 만들어 낸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치유란 삶 속에서 ‘육체의 가시’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일 터이니.
3.
어릴 적 내 고향 신촌에서는 억센 황해도 평안도 사투리들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내 또래 친구들 중에도 이북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내 친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부모들이 곧 돌아갈 고향을 그리다 이젠 거의 세상을 뜨셨다.
내 피붙이들 가운데도 그렇게 못 다 이룬 귀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 뜨신 이들도 여럿이다.
통일(統一).
일 세대 통일 운동의 선구자들 중 마지막 사람 백기완 선생의 부음에 그를 기리는 소리들이 넘쳐난다.
통일, 농민과 노동자와 빈민와 민중들. 분단으로 잉태되고 이어지는 모든 불의에 온 몸으로 항거했던 맨 사람.
살며 때론 외로웠을 ‘노나메기’ 꿈쟁이.
그가 있어 예까지 온 것만이라도 인정하는 산 자들이 되어야.
우리 세대의 치유를 위하여.
죽은 줄 알았던 내 세탁소 호접란((胡蝶蘭)이 다시 꽃을 피우다.
치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