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주전에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내가 물었었다. ‘영화 평(評)은?’. ‘글쎄… 그저 덤덤허네, 딱히 미국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을 바꾼 이들이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아닌가? 뉴스 주목도는 한국 영화나 문화 전반 또는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에 상품성이 생긴 탓은 아닐까?’ 내 대답이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안목이 천박하리 만큼 지극히 낮은 내 수준이 드러난 응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제 들은 그의 부음(訃音)으로 인해 오늘 하루 영화 <미나리>를 곱씹었다.
정세영.
그와 내가 깊은 교분을 나눈 적은 없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 차례 식사를 함께 나눈 적이 있고, 몇 차례 스쳐 지나며 눈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을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해 마다 새해를 맞으면 그는 짧은 새해 인사를 먼저 보냈고 나는 늘 뒤늦게 그 보다 더 짧은 응답으로 서로의 연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올 새해 인사는 나누지 못한 채 그가 떠났다.
정세영.
그의 이름은 필라델피아와 한인 그리고 국악(國樂)과 함께 한다. 아니 국악 이라기 보다는 ‘우리 가락’, ‘우리 소리’가 더 맞을 게다. 자칫 한(恨)을 쌓아 가기 십상인 이민의 삶에 흥(興)을 돋아 내는 가락과 소리를 지켜내려 애 쓴 사람 – 내가 그를 기억하는 고리다.
정세영.
이제 막 필라에 사는 한인 노인들 가장 말석에 얼굴 내밀어 노인들을 위한 마당쇠 노릇 마다치 않고자 했던 애기 노인. 그가 … 쯔쯔… 하수상한 세월 버티지 못하고 너무 일찍 장구채 놓았다.
그가 놓은 징 채, 장구채 아래 때없이 자라는 <미나리> 밭을 본다.
필라델피아, 한인사회 아니 그를 뛰어 넘어 흥을 북돋을 정세영의 미나리 밭, 우리 소리 우리 가락.
정세영형.
이제 내가 가늠할 수 없던 신산했던 삶도, 그 흥 속에 은밀히 감추었을 한도 다 내려 놓고 편히 쉬시길.
정세영형에게 보내는 가장 긴 새해 인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