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새해 정월도 열흘이 지나간다. 한껏 게으름 피우다 느즈막히 이제서야 새해를 맞는다.  지난 한 해 일상이 휘청거렸던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닐 터임에도 그것을 되씹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낯선 경험들이 일상화 되었던 한 해를 정리하고, 그렇게 새롭게 일상화된 생활들이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들이 길어야 함은 어쩌면 마땅한 일일 터이다.

그렇다고 긴 시간 동안 특별히 한 일은… 없다. 그저 내가 다스릴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 하나 다짐한 일 정도 이외엔.

아직 일을 접고 은퇴 하긴엔  이르다는 욕심으로,  내 평생의 업이 된 세탁소를 심상찮은 올 한 해도 꾸준히 이어 가기 위한 준비에 조금 공을 드리기는 했다.

그리고 가족들, 이런 저런 안부로 이어지는 이웃들, 세상 뉴스 속에서 만나는 시대의 고민들, 살며 이어 온 사람살이에 대한 믿음과 소망들을 거쳐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선 질문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2021년 새해를 맞는다.

이왕에 더딘 걸음으로 시작하는 새해 두 번 째 일요일, 벽암록(碧巖錄)에 빠져 보내다.

벽암록 일흔 일곱 번 째 이야기, ‘운문의 호떡(雲門餬餠)’이다.

<한 스님이 운문 화상에게 물었다. “부처의 말도 조사들의 말도 너무 들어서 싫으니 그들이 하지 않은 한마디를 해주십시오.” 그 즉시 운문 화상은 “호떡”이라고 대답했다.>

새해, 호떡 하나 입에 물고 쓰잘데 없는 소리에 혹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 미망(迷妄)에 머무를 나이는 이제 훌쩍 벗어났으므로.

그저 건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기뻐할 일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며.

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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