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이제 막 어둠을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훤한 얼굴을 내민다. 음력 섣달 보름이니 설이 멀지 않았다. 바람은 아직 차고, 다음 주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지만 예부터 설은 이미 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참 좋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삼십 수 년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고향 신촌의 옛 날씨들을 그대로 만끽하는 순간들이다. 신촌에서 보낸 삼 십 수 년보다 조금 더 긴 세월들을 이 곳에서 살았다. 그렇게 따져보니 내 평생을 거의 엇비슷한 날씨 환경에서 산 게다. 내가 누리며 사는 또 하나의 복이라 생각한다.
굴곡 없는 삶을 꾸려온 사람들이 거의 없듯, 나 역시 평범하게 그 대열에 섞여 살아왔다. 헛 꿈도 참 많이 꾸었다. 지금도 아차 하는 순간,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는 생각들을 다잡아 다독일 때가 있다. 다행이랄까 아님 늙었다 할까, 행동이 그 생각을 쫓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곳에서 살며 시작한 세탁업에서 벗어 나고자 용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큰 꿈을 꾸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다졌었다. 큰 꿈이 헛 꿈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쇠할 나이에 이른 후였다.
그제서야 세탁업을 내 생업이자 평생의 업으로 받아 들였었다.
그 무렵 즈음이었을 게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 것이.
손님 한 분이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라며 작은 선물과 카드를 전했다. 말의 고마움이라니.
세탁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보름달에 새겨보는 감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