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꿈이 하나 있다. 아무 걱정없이 일년에 보름 정도는 쉬며 여행을 다니는 꿈을 정말 오래 꾸었었다.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틈틈이 몇 년에 한 차례 씩 그 쉼의 즐거움을 누리기는 하였다.
나이 60을 넘길 무렵이었던 때엔 정말 다부지게 그 꿈을 이루고자 마음 먹었었다. 기차를 타고 서부여행을 하기도 했고, 남부 플로리다와 바하마를 다녀오고, 파리 여행도 즐겼다.
그렇게 그 오래된 꿈을 해마다 누릴 수도 있겠다는 기쁨에 빠질 무렵에, 부모들이 노환으로 앓기 시작하면서 먼 여행을 갈 여유와는 멀어졌다. 장모, 장인, 어머니 순서로 병 간호를 하고 그들을 떠나 보내며 여행의 꿈을 접기 시작했다. 이즈음엔 95세 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다.
더더구나 끝을 모를 팬데믹으로 여행의 꿈은 이젠 사치가 되어버렸다. 휴가에 대한 꿈 역시 마찬가지다. 생업인 세탁소의 존폐가 걸린 눈앞의 현실에 휴가란 더 할 수 없는 사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꿈이 오늘을 사는 즐거움의 샘물인 것만으로도 이미 족하다.
하여 이즈음엔 새로운 꿈을 꾼다.
보름 동안에 긴 휴가를 누리는 꿈을 접는 대신, 한가해진 가게 영업으로 남는 자투리 시간들을 여유롭게 즐기는 꿈이 하나요, 책과 다큐멘타리 영상 등 간접경험으로 그 여행의 꿈을 대신하는 시간을 관리하는 꿈이 둘째다. 그 재미도 만만치 않다.
텃밭농사 일년 계획을 세우며 맛보는 즐거움은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호사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겨울 숲길을 걸었다. 겨울 숲은 을씨년스럽게 황량하고 숲속 바람은 소리로만 불지만, 나무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다. 꿈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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