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게으름을 즐기기엔 딱 좋은 날씨다. 아침나절부터 흩뿌리던 눈발이 오후 들어 쉬지 않고 내린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모레 화요일 아침까지 7인치에서 14인치 가량의 눈이 내릴 것이란다. 제법 오긴 올 모양이다. 음력 섣달 말미에 내리는 눈 덕에 연휴를 즐길 모양이다.

눈 치울 걱정일랑은 뒤로 미루고 오늘 하루는 그저 몸과 맘이 가는 대로 쉬기로 작정했다.

이즈음 일요일이면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일주일치 빵을 굽는다. 이 일이 제법 재미있다. 오늘은 내가 새로운 빵에 도전해 보았다. 각종 야채 듬뿍 넣은 호빵이었는데 첫 작품 치고는 만족도가 높았다.

내친 김에 점심으로 수제비 떠서 해물 육수에 콩나물 넣어 땀 흘리며 배 불렸다.

밀려오는 낮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되어 있던 줌(zoom)모임에 참석했다.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리 센터(Woori Center) 이사회 연수회 모임이었다. 우리센터는 이젠 여러 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한인사회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조직하여 지역 및 국가 시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어 주장하고, 스스로의 권익을 찾아 보자는 뜻으로 2018년에 설립된 단체이다.

나는 그저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 하는 일은 없지만 이 단체에 대한 애정은 지극하다.

적어도 내가 이민을 온 후 이제 까지 한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인근 외곽지역에서, 전문가들도 아니고 명망가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꽤나 있는 부유층들도 아니고 교회나 종교를 앞세우지도 않고 더더구나 진보적 가치를 내걸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큰 가능성을 보인 단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더해 이 단체에 대한 기대가 큰 까닭은 단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고자 함께 모였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른한 오후의 졸음 떨치고, 연수회 머리 수 하나 채웠다.

내 아이들 다 독립해 떠난 이후, 지펴 본 적 없는 벽난로에 불장난도 하면서 일월의 마지막 날 한껏 게으름을 즐기다.

  1. 31. 2

DSC01646 DSC01647 DSC01651 DSC01654 DSC01656 DSC01658

상식에

아직 할머니 소리 듣기엔 이른 손님 하나가 내게 물었다. ‘요즘 한국은 어때요?’ 내 대답, ‘뭘 말씀 하시는지?’

그렇게 이어진 오늘 내 가게에서 이어진 그녀와의 대화다.

손님 : ‘코빗(Covid) 상황이 어떤지?’

나 : ‘글쎄요,  제가 듣기론 이즈음 확진자 수는 하루 3-4백 명 정도라고 하네요.’

손님 : ‘그럼 여기랑 비슷하군요.’

나 : ‘아니지요. 거긴 오천 만 명에 삼 사백이고, 여긴 백만명에 삼 사백인걸요.’

손님 :  ‘아휴 그럼 갈 만하네요. 가면 아직도 두 주간 격리를 하나요?’

나 : ‘글쎄요???’

나보다 한국 상황에 더 익숙한 듯한 하얀 얼굴 손님의 말이 이어졌다.

손님 : ‘오는 사월에 한국엘 가려 하는데…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 내 아들녀석의 전 여친이 결혼을 한다고 우리 모자를 초대해서 가보려구요.’

나 : ‘글쎄, 이즈음 한국은 저도 잘 모른답니다. 그저 뉴스나 보는 정도이지…’

그녀가 가게를 떠난 후 한참 동안 난 좀 멍했다.

그녀 아들의 전 여친은 한국 아이란다.

아무렴,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상식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없다.

이제 난 틀림없는 쉰 세대이다.

DSC01640a

생업(生業)

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이제 막 어둠을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훤한 얼굴을 내민다. 음력 섣달 보름이니 설이 멀지 않았다. 바람은 아직 차고, 다음 주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지만 예부터 설은 이미 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참 좋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삼십 수 년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고향 신촌의 옛 날씨들을 그대로 만끽하는 순간들이다. 신촌에서 보낸 삼 십 수 년보다 조금 더 긴 세월들을 이 곳에서 살았다. 그렇게 따져보니 내 평생을 거의 엇비슷한 날씨 환경에서 산 게다. 내가 누리며 사는 또 하나의 복이라 생각한다.

굴곡 없는 삶을 꾸려온 사람들이 거의 없듯,  나 역시 평범하게 그 대열에 섞여 살아왔다. 헛 꿈도 참 많이 꾸었다. 지금도 아차 하는 순간,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는 생각들을 다잡아 다독일 때가 있다. 다행이랄까 아님 늙었다 할까, 행동이 그 생각을 쫓아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곳에서 살며 시작한 세탁업에서 벗어 나고자 용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큰 꿈을 꾸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다졌었다. 큰 꿈이 헛 꿈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쇠할 나이에 이른 후였다.

그제서야 세탁업을 내 생업이자 평생의 업으로 받아 들였었다.

그 무렵 즈음이었을 게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 것이.

손님 한 분이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내라며 작은 선물과 카드를 전했다. 말의 고마움이라니.

세탁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보름달에 새겨보는 감사에.

DSC01586ab

 

낮달

뉴스들은 언제나 답답한 세상 모습을 전하지만,  때때로 속 시원한 소리를 듣게 하기도 한다. 팍스 뉴스 선데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 때 공화당 내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이기도 했던 롬니(Mitt Romney) 상원의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며 한 말이란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가 하나가 되려면 진실과 정의에 대한 책임감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nd, you know, if we’re going to have unity in our country, I think it’s important to recognize the need for accountability, for truth and justice.”

국가 구성원이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거나 반드시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크게 동의하는 편은 아니다만, 어느 국가나 사회건 진실과 정의에 엇나간 과거 행위에 대한 책임은 묻고 정리하여 마무리 짓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그 국가나 사회의 내일이 밝아진다고 믿는다.

오늘 아침 동네 뉴스는 어제 오늘 있었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 현장 소식을 머리에 올렸다. 어제와 오늘 사이 접종 예정자 수는 11,500명 이었단다. 접종 신청자는 이미 50,000명이 넘는 상태였단다. 이번 접종 신청은 65세 이상 노인들에 한한 것이었다. 접종 우선 순위는 고령자와 기저 질환자들 이었다. 이번 이틀 동안 접종 대상자들에겐 이미 통보가 되었다는데, 어제 첫날 통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청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밀려 북세통을 이룬 모양이었다.

신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내 집에서 접종 장소까지는 차로 반 시간 정도면 충분히 닿을 거리인데 내 집 동네 사람 하나는 왕복 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차량 대열에서 기다리던 80세 노인이 한 말이란다. “악몽이었다.( It was a nightmare.)”고.

내 아버지의 접종 신청은 하였다만 나는 아직 망설이고 있다. 해본들 특별한 질환이 없는 내 순서를 맞기엔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초기 광풍의 시간은 지난 후에 신청해 볼 요량이다.

현재 미국인들 중 약 7%가 넘는 사람들이 감염 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8% 이상이 감염되었을 수 있다는 뉴스도 있고, 트럼프 백악관에는 바이러스 대책 팀조차 없었다는 뉴스도 있고….

이런 저런 답답한 뉴스 속에서 만난 롬니 상원의원의 말이었다.

그리고 진실과 정의 대한 책임감을 묻고 따져 정리하는 일은 결국 시민들의 몫일 터이다. 이른바 여론이다. 하여 시장(市場)에 거짓은 더욱 횡행하는 모양이고.

뉴스 속 세상은 여기나 저기나 매양 한가지다. 그저 시대에 맞는 시민이 되는 흉내라도 내며 살았으면 좋겠다.

길은 겨울이어도 여전히 누구에게나 푸근하다. 길을 내가 품는 한.

씩씩하게 걷는 아내 머리 위로 햇빛에 주눅 들지 않은 낮달이 웃고 있었다.

1/ 24/ 21

DSC01589 DSC01599 DSC01603 DSC01604 DSC01607 DSC01611 DSC01616 DSC01629 DSC01637

성서에

내가 우리 동네신문이라고 일컫는 The News Journal지의 시초는 1866년이니 그 역사가 제법 오래 되었다. 긴 세월 신문의 이름과 소유주는 여러 번 바뀌며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오래 이 신문을 소유했던 것은 델라웨어주의 거부였던 듀퐁(Du Pont)가문이었다. 1919년 부터 현재의 이름인 The News Journal을 쓰기 시작했으며, 듀퐁 가문이 이 신문에서 손을 뗀 것은 1978년이었다. 그 후 1989년에 델라웨어 주내 경쟁사 두 곳을 병합시켜 오늘에 이른 The News Journal 은 명실공히 델라웨어 주를 커버하는 유일한 신문이다.

이 우리 동네 신문에 지난 몇 달 동안 헤드라인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룬 기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죠 바이든 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죠 바이든, 그리고 사건사고 기사는 아침 눈뜨면 만나게 되는 뉴스거리들이었다.

며칠 전 재미있게 읽은 기사로, 엊그제 워싱톤으로 떠난 바이든과 그의 일행들이 몇 달 동안 이 곳에 머무르면서 그들이 지역 상점들을 이용한 내역들을 공개한 것이 있었다. 듀퐁 호텔을 비롯해 아침 전문 식당, 카페, 주점 등등 어느 가게에서 얼마의 돈을 사용했는지 이른바 바이든 호황을 누린 가게들을 다룬 기사였다.

이 시간 현재 이 신문의 헤드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 역시 바이든의 가족 이야기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도를 했던 이 곳의 목사 이야기와 백악관으로 향하는 대열의 선두에 섰던 바이든의 모교 델라웨어 대학 밴드부 소식도 뉴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델라웨어 대학 밴드부 제복을 비롯해 이 대학 세탁물들은 내 주 수입원 가운데 하나인데, 지난 일년 여 학생들 활동이 없다 보니 세탁할 일이 없어졌다. 밴드부 소식에 하루 입었으니 세탁해야겠다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하는 헛 꿈도 꾸어 본다.

우리 동네 신문은 바이든에게 특별 주문까지 하여 ‘델라웨어 주민들에게 전하는 대통령의 편지’를 게제하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바이든은  ‘델라웨어야말로 미국인들이 이루어 내야 할 모범’이라고 추켜 세우며, “내가 죽을 때, 더블린은 내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라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명언을 인용하며 델라웨어에 대한 감사와 고향을 잊지 않겠노라는 말을 보탰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을 보면서 내 눈을 끈 것은 바이든이 선서할 때 사용한 두꺼운 성경과 아만다 고든(Amanda Gorman)의 시 낭송이었다. 그녀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과 그녀의 몸짓은 어제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오늘 우리 동네 신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제 취임식에서 사용된  5인치 두께의 성서는 1893년 이래 오늘까지 바이든 집안이 간직해온 가보란다. 1973년 그가 첫 번 째 상원의원이 되어 선서할 때와 부통령이 되었을 때, 그리고 죽은 그의 장남(Beau Biden)이 2013년 주 법무장관에 취임할 때 이 성서를 사용했단다.

635686296192668113-Obit-Beau-Biden-Okam-3-

성서 – 이즈음 내가 성서를 통해 새롭게 곱씹어 보는 말이 하나 있다.  ‘성서란 오늘을 견디어 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견디어 내며 살’되 ‘내일을 위한 싸움’에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바로 성서라는 생각 말이다.

바라기는 가보(家寶)나 선서(宣誓)용 성서가 아닌 ‘오늘을 견디어 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서의 성서가 바이든의 임기에 함께 하기를 빌며.

*** 이즈음 한국 뉴스 속 세월호 가족들 소식을 들을 때면 ‘오늘을 견디어 내는’ 성서 속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photo_2021-01-21_21-19-46

 

오래된 꿈이 하나 있다. 아무 걱정없이 일년에 보름 정도는 쉬며 여행을 다니는 꿈을 정말 오래 꾸었었다.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틈틈이 몇 년에 한 차례 씩 그 쉼의 즐거움을 누리기는 하였다.

나이 60을 넘길 무렵이었던 때엔 정말 다부지게 그 꿈을 이루고자 마음 먹었었다. 기차를 타고 서부여행을 하기도 했고, 남부 플로리다와 바하마를 다녀오고, 파리 여행도 즐겼다.

그렇게 그 오래된 꿈을 해마다 누릴 수도 있겠다는 기쁨에 빠질 무렵에, 부모들이 노환으로 앓기 시작하면서 먼 여행을 갈 여유와는 멀어졌다. 장모, 장인, 어머니 순서로 병 간호를 하고 그들을 떠나 보내며 여행의 꿈을 접기 시작했다. 이즈음엔  95세 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다.

더더구나 끝을 모를 팬데믹으로  여행의 꿈은 이젠 사치가 되어버렸다. 휴가에 대한 꿈 역시 마찬가지다. 생업인 세탁소의 존폐가 걸린 눈앞의 현실에 휴가란 더 할 수 없는 사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꿈이 오늘을 사는 즐거움의 샘물인 것만으로도 이미 족하다.

하여 이즈음엔 새로운 꿈을 꾼다.

보름 동안에 긴 휴가를 누리는 꿈을 접는 대신, 한가해진 가게 영업으로 남는 자투리 시간들을 여유롭게 즐기는 꿈이 하나요, 책과 다큐멘타리 영상 등 간접경험으로 그 여행의 꿈을 대신하는 시간을 관리하는 꿈이 둘째다.  그 재미도 만만치 않다.

텃밭농사 일년 계획을 세우며 맛보는 즐거움은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호사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겨울 숲길을 걸었다. 겨울 숲은 을씨년스럽게 황량하고 숲속 바람은 소리로만 불지만, 나무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다. 꿈을 품고.

1/ 17/ 21

DSC01542DSC01543DSC01546DSC01547DSC01552DSC01554DSC01555DSC01560DSC01561DSC01562DSC01563DSC01570DSC01571DSC01572

두어 주전에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내가 물었었다. ‘영화 평(評)은?’. ‘글쎄… 그저 덤덤허네,  딱히 미국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을 바꾼 이들이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아닌가? 뉴스 주목도는 한국 영화나 문화 전반 또는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에 상품성이 생긴 탓은 아닐까?’ 내 대답이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안목이 천박하리 만큼 지극히 낮은 내 수준이 드러난 응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제 들은 그의 부음(訃音)으로  인해 오늘 하루 영화 <미나리>를 곱씹었다.

정세영.

그와 내가 깊은 교분을 나눈 적은 없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 차례 식사를 함께 나눈 적이 있고, 몇 차례 스쳐 지나며 눈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을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해 마다 새해를 맞으면 그는 짧은 새해 인사를 먼저 보냈고 나는 늘 뒤늦게 그 보다 더 짧은 응답으로 서로의 연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올 새해 인사는 나누지 못한 채 그가 떠났다.

정세영.

그의 이름은 필라델피아와 한인 그리고 국악(國樂)과 함께 한다. 아니 국악 이라기 보다는 ‘우리 가락’, ‘우리 소리’가 더 맞을 게다.  자칫 한(恨)을 쌓아 가기 십상인 이민의 삶에 흥(興)을 돋아 내는 가락과 소리를 지켜내려 애 쓴 사람 – 내가 그를 기억하는 고리다.

정세영.

이제 막 필라에 사는 한인 노인들 가장 말석에 얼굴 내밀어 노인들을 위한 마당쇠 노릇 마다치 않고자 했던 애기 노인. 그가 … 쯔쯔… 하수상한 세월 버티지 못하고 너무 일찍 장구채 놓았다.

그가 놓은 징 채, 장구채 아래 때없이 자라는 <미나리> 밭을 본다.

필라델피아, 한인사회 아니 그를 뛰어 넘어 흥을 북돋을 정세영의 미나리 밭, 우리 소리 우리 가락.

정세영형.

이제 내가 가늠할 수 없던 신산했던 삶도, 그 흥 속에 은밀히 감추었을 한도 다 내려 놓고 편히 쉬시길.

정세영형에게 보내는 가장 긴 새해 인사로.

호떡

새해 정월도 열흘이 지나간다. 한껏 게으름 피우다 느즈막히 이제서야 새해를 맞는다.  지난 한 해 일상이 휘청거렸던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닐 터임에도 그것을 되씹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낯선 경험들이 일상화 되었던 한 해를 정리하고, 그렇게 새롭게 일상화된 생활들이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들이 길어야 함은 어쩌면 마땅한 일일 터이다.

그렇다고 긴 시간 동안 특별히 한 일은… 없다. 그저 내가 다스릴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 하나 다짐한 일 정도 이외엔.

아직 일을 접고 은퇴 하긴엔  이르다는 욕심으로,  내 평생의 업이 된 세탁소를 심상찮은 올 한 해도 꾸준히 이어 가기 위한 준비에 조금 공을 드리기는 했다.

그리고 가족들, 이런 저런 안부로 이어지는 이웃들, 세상 뉴스 속에서 만나는 시대의 고민들, 살며 이어 온 사람살이에 대한 믿음과 소망들을 거쳐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선 질문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2021년 새해를 맞는다.

이왕에 더딘 걸음으로 시작하는 새해 두 번 째 일요일, 벽암록(碧巖錄)에 빠져 보내다.

벽암록 일흔 일곱 번 째 이야기, ‘운문의 호떡(雲門餬餠)’이다.

<한 스님이 운문 화상에게 물었다. “부처의 말도 조사들의 말도 너무 들어서 싫으니 그들이 하지 않은 한마디를 해주십시오.” 그 즉시 운문 화상은 “호떡”이라고 대답했다.>

새해, 호떡 하나 입에 물고 쓰잘데 없는 소리에 혹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 미망(迷妄)에 머무를 나이는 이제 훌쩍 벗어났으므로.

그저 건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기뻐할 일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며.

호떡.

DSC09422 DSC09444

희망에

투쟁과 쟁취를 위한 행동을 늘 앞세웠던 선배는 나를 가르쳤다. ‘희망이란 약자들과 패자들의 언어’라고. 나는 그 가르침을 거절했었다. ‘투쟁과 쟁취를 위한 행동은 희망에서 시작된다’며.

아침과 저녁을 자주 헷갈리시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한 시간은 마치 하루처럼 길지만, 새해 첫 날 아버지에게 드린 선물로 그만한 것은 없었다.

뉴스나 내일에 대한 전망들이 내 맘에 든 적은….. 거의 없지? 아마.

그래도 나는 새해 아침 희망을 품는다. 그 생각으로 손님들에게 새해 첫 편지를 띄우다.

————————————————————————————-

Happy New Year!

2021이라는 숫자가 우리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하루가 똑같은 날들이지만,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뀜으로 오늘 누리고 있는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한해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팬데믹으로 하여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Time지가  2020년은 “역대 최악의 해”라고 선언할 만큼 어렵고 힘든 한 해였습니다. 저 역시 한 해를 보내며 2020년을 정리하면서 한숨을 그칠 수가 없었답니다.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오지만 지난 해처럼 어려웠던 것은 처음이었답니다. 한 해 동안 들어오고 나간 돈들을 계산해보니 그저 한숨이 절로 나왔답니다.

제 말을 믿거나 말거나 그 한숨 속에서도 제가 놓치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는 생각과 말은 바로 감사입니다.

비록 가게 매상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지금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고, 이런 현상은 새해에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감사를 놓치지 않는 까닭은 아직은 우리 부부가 건강히 일 할 수 있음이 첫 째고, 비록 지난 해나 오늘이나 걱정들이 넘쳐나지만 우리 부부가 여전히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이 둘째입니다.

건강은 스스로 늘 조심하고 잘 보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세상 일이 어디 다 자기 생각대로 되는 일이 아니므로 건강한 하루 하루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산답니다.

희망이야말로 어제와 오늘의 걱정들과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사는 오늘에 감사를 이어간답니다. 희망이란 저절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걸어 나가 잡을 수 있는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 감사의 크기가 커진답니다.

2021년, 우리 모두가 처음 맞는 시간들을 맞습니다.

태양과 희망을 홀로 차지할 주인은 없지만, 태양과 희망은 그것을 품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희망을 품어 웃음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https://conta.cc/2JFn7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