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 기억나시나?” 아내가 유투브 영상을 하나 보여주며 건넨 말이다.
오늘 2020년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1970년대 서울 거리로 돌아가 ‘Auld lang syne’과 ‘I understand…’을 합성한 노래를 몇 번이나 되돌려 들었다.
우리 나이가 새삼스레 떠난 님에 대한 정이 그리울 나이도 아니거니와, 다시 돌와오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기다리겠다는 어줍잖은 약속을 팔 나이도 아니기에 노랫말에 감흥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 노래가락 흥에 취해본 것이었다.
우리 내외 젊었을 무렵 이맘 때면 서울 거리 곳곳에서 아님 다방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노래였다. 많이들 쫓아 부르기도 했었고.
이해, 이별, 사랑, 기다림, 변심, 그리고 다시 사랑, 이해.
그 대상을 연인이나 사람이 아닌 시간으로 바꾸어 곱씹어 본다. 이젠 아주 떠나가 버린 시간들, 내가 간절히 기다린다한들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시간들. 단지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곱씹어 이해하는 일. I underst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just how you feel
Your love for me, why not be mine?
It’s over now but it was gr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If you ever change your mind
Come back to me and you will find
Me waiting there, at your comm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I miss you so, please believe me when I tell you
I just can’t stand to see you go
You know
If you ever change your mind
Come back to me and you will find
Me waiting there at your comm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I understand just how you feel. Let bygones be bygones. But always
remember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I understand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낸다. 2020이라는 숫자.
그리고 신(神)이 예비해 주신 새로운 시간을 만난다. 돌아가신 송기득 선생께서 가르쳐주신 만남이다.
<희망이야말로 아픔을 극복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다. 희망은 그대로 존재를 나타내는 용기다. 이 용기는 오늘의 아픔을 극복하고 내일의 새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생동력이 된다. 새 세계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거기에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아픔은 자칫 <절망과 허탈속의 아픔>으로 끝내 버릴 위험이 있다. 우리의 아픔이 희망을 품기 위한 아픔, 창조를 이루어 내는 아픔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위에 이외수선생의 가르침을 얹어본다. <희망은 품는 자의 것>이라는….
20년을 이해하며 21년을 품어보는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