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1.

지난 주 바이러스 하루 확진자가 천명 가까이에 이르자 주지사는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라(stay-at-home)”는 명령을 재개하였다. 비록 강제 명령이 아닌 권고성이라 할지라도 현재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알 수 있는 소식이다.

백 만명이 사는 지역에서 하루 천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가히 공포다. 다행히 엊그제 사이 하루 칠백 여 명으로 숫자가 줄기는 하였지만 그 공포의 도가 줄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여도 도로를 달리는 차량 수를 보면 여느 일상과 전혀 다름없고, 나 역시 아침이면 세탁소 문을 연다. 내 가게 문을 들어서는 손님 숫자는 아직 공포에 이를 만큼 줄지는 않았지만 또 다시 뜸해진 것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즈음 사정을 두루 잘 아는 내 오랜 단골 하나가 지난 주에 내게 건넸던 말이다. ‘사는 놈이 이기는거지! 세탁소를 드나드는 손님들 총량과 빨래감의 총량은 당연히 줄겠지. 그러다보면 하나 둘 문을 닫겠지. 그럼 남는 놈이 줄어든 손님들과 빨래감들을 차지하겠지. 그래 그렇게 사는 놈은 결국 산다니까. 염려말라고 친구!’

나는 그냥 웃었다.

2.

두 주 동안 딸아이는 격리생활에 철저하였다. 두 주 전 맨하턴에서 차 뒷자리에 탄 아이는 내가 마스크를 벗자 아무말 없이 뒷 창문을 열었다. 나는 움칠했었다.

그렇게 아홉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아이는 집안에서 우리 내외하곤 거의 격리 상태로 지냈다. 나는 아이의 생각에 따랐다.

그리고 오늘 아이와 함께 ‘에고 제 시집가는거 보고 죽으면 다 이룬건데…’ 그 욕심 채우지 못하고 가신 어머님 찾아 뵙다. 어머니 가신 후 딸아이와는 오늘 첫 만남이다.

‘할머니 옆에 내 자리, 그 옆에 네 엄마 자리…’운운하는 내게 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와 장인 장모에게 성탄장식으로 계절을 알리다.

살아남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 역시 시간에 달린 일이지만.

3.

좋은 글들을 만나면 아직은 가슴이 뛴다.

<검찰 독립성의 핵심은 힘 있는 자가  힘을 부당하게 이용하고도 돈과 조직 또는 정치의 보호막 뒤에 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추미애가 그의 페북에 올린 글 첫 문장이다. 나는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숙성된 오랜 물음에 대한 선언으로 읽었다.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모든 권력과 제도가 마땅히 지켜 나가야 할 저지선을 굳건하게 만들고 지켜 나가는 일이 바로 그저 하루를 작은 욕심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살아남기 선언일 게다.

4.

오후에 두 시간 반 먼 여행길을 다녀 오다. 한국 EBS 방송 <세계 테마 여행 : 천상의 왕국-부탄>편을 넋 놓고 즐기다.

부족함을 넉넉함으로 느끼며 사는 삶과 넉넉함에 욕심을 더하는 삶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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