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하는 떳떳함이 차츰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만, 단언컨데 최근 십 수년 이래 일반 가정들의 크리스마스 치장(治粧)은 올해가 단연 으뜸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일반 가정들의 크리스마스 치장은 분명 줄어드는 추세였고, ‘Merry Christmas!’ 보다는 ‘Happy Holidays!’라는 인사가 보편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글쎄, 내가 사는 동네에 국한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올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도 많고 그 치장이 예년에 비해 사뭇 화려하다. 그 또한 다만 내 기분 탓 인지도 모를 일이다만.
너나없이 그야말로 지난(至難)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종교적 의지가 강해진 탓도 있을 터이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쌓인 이런저런 욕구들이 치장으로 분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흘을 쉬며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들을 누리게 해 준 성탄절에 치장 대신 감사를 드린다. 한 해를 무사 무탈하게 지낸 감사가 이리 컷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조심조심하면서도 ‘설마…’하는 낙관이 늘 앞서 있었지만, 바이러스 확진 소식들을 가게 손님들과 먼 이웃들에게서 듣기 시작하고, 이즈음에 들어서는 가까운 이웃들과 내 가족들과 이어진 사람들에게서 듣다 보니 아직 무사 무탈함이 그야말로 큰 감사로 다가온다.
돌아보니 신기할 정도로 감사한 것은 가게 매상이 지난 해에 비해 반토막 이상이 줄었음에도 이럭저럭 한 해를 큰 걱정없이 보낸 일이다. 지난 주 내린 폭설과 강풍 탓에 뒷뜰 소나무 몇 그루가 부러져 넘어졌다. ‘돈 들일 일 또 생겼군’하는 걱정이 들 무렵인 지난 월요일, 바이러스 재난지원금 지급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쓰러진 나무들을 제거하는 데 드는 경비와 우리 부부가 받게 될 재난지원금이 얼추 맞아 떨어져 걱정을 금새 덜었다.
그래 또 성탄에 이는 감사다.
이즈음에 매일 페이스북에서 기다리며 읽는 글이 하나 있다. 한국의 진혜원검사가 올리는 페북 글이다. 그의 글은 우선 재밌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물매를 돌리고 있는 다윗을 보는 스릴이 넘친다. 현실은 그저 스릴만 넘치는 연속 동작이어서 그에 대한 안타까움만 이어가며 읽기는 한다만.
아무튼 어제 그가 올린 <훗, 이게 인생이지>이라는 글에서 그가 단언한 말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권력은 종교와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떠올라 손에 든 것은 리차드 호슬리의 책 <크리스마스의 해방>이다.
크리스마스와 해방이라는 어찌보면 서로 맞붙어 싸우는 말이 하나가 된 이 책에서 호슬리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 참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바로 종교와 돈으로 신비스럽게 포장되고 치장된 크리스마스를 벗겨내어 해방시키고, 예수의 참모습인 ‘오늘 여기에서 고통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만나자는 주장이다.
리차드 호슬리의 주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인물 및 사건에 관련된 그들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토론 가운데서 나타난다.>
어찌보면 갇힌 듯 모든 것들이 답답한 오늘이지만, 지난 시간들에 대한 감사와 다시 시작하는 새날들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엇비슷한 고백들로 이어진 사람들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돈을 쫓고 누리되 권력이 되고자 하는 일에는 물매 들고 싸우는 이들.
그렇게 또 한 해가 저무는 성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