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십 수 년 동안 한국관련 뉴스 하고는 거의 담 쌓고 살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의도했던 바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한국 소식을 접할 기회가 정말 적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리 살 수 밖에 없던 때였다. 컴퓨터니 인터넷이니 하는 물건이나 기능들이 아직 나와는 낯 선 때였고, 한국 소식을 들으려면 필라델피아나 뉴욕 또는 워싱턴 나들이를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두환 시대가 끝날 무렵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실 즈음까지의 한국 소식은 언제나 내겐 낯설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르러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내게 다가온 한국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박정희가 피살되어 그의 장례가 있던 날, 광화문 일대를 메우고 통곡하던 국민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시민이 되어 내게 다가온 세상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새 세상이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젠 내가 서울에 사는 것인지, 미국 촌구석에 사는 것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손 전화 뉴스 알림 기능은 실시간으로 내가 사는 동네 소식부터 우리 주 소식과  미국내 소식 나아가 한국 소식들을 속보로 알려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그렇게 빠르게 변했던 한국의 변화는 더디거나 뒷걸음 치기 일수였다.

빠른 소식으로 변화는 그렇게 너무나 더디어졌다.

오늘 그 더딘 변화에 대한 답답함 끝에서 떠오른 생각 하나.

변화는 언제나 답답한 걸음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라는.

내가 한국 소식에 한참 민감했던 십 수 년 전 어느 날,  우연찮게 잠시 마주쳐 인사 나누었던 추미애라는 사람은 나처럼 작고 연약했지만, 그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음에도 겸손하고 당당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가 웃음으로 새로운 변화가 이는 한국 소식을 기다리며.

오늘 따라 하늘에 구름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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