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준비

갑자기 밤이 터무니없이 길어졌다. 시간이 바뀐 탓이다. 달포 전에 주문한 가을구근들을 일요일인 오늘에야 받았다. 시간 바뀌기 전에 심어야겠다고 준비했던 것인데 짧아진 낮시간을 잘 이용해 보라는 깊은 뜻으로 새기며 투덜거림을 멈춘다.

길어진 밤시간을 위해 몇 권의 책들도 주문 하고, 떡을 만들어 보는 시늉도 해 보았다. 오늘은 떡이 물릴 때 먹어 볼 요량으로 식빵을 만들어 보았다.

이즈음은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고 흉내만 내어도 대충 엇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저 놀랍다. 어찌어찌 시키는대로 해 보았더니 호두와 클랜베리 들어 간 훌륭한 식빵이 되었다. 맛도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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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긴 밤 보낼 준비는 대충 끝낸 듯 하다.

기도

11월 초하루 아침, 기도 드리듯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늘 그렇듯 언제나 받는 이는 나일수도….


이즈음엔 제 세탁소를 찾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저희 가게 오랜 단골 중 한 분이 지난 주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매우 독특했답니다. 비닐로 만든 마스크였습니다. 제 아내가 물었답니다. ‘면 마스크가 없으신가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답답해 보이네요.’ 그리고 건네 받은 그녀의 대답이랍니다. ‘답답하기야 하지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귀가 어두워 잘 듣지를 못해요. 내가 말하는 입모양을 보아야 서로 의사소통이 쉽답니다. 그래 이 마스크를 쓰고 있답니다.’

30년 전 한참 왕성하게 일하던 오랜 단골들은 이젠 모두 노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세탁소를 시작하던 때가 30대였는데 저 역시 이젠 60대이고 70을 향해 간답니다.

세월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가 꼭 필요한 이즈음의 일상이 나이 들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엊그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분인 황동규 시인이 새 시집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는 올해 여든 두 살이랍니다.

거의 60여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시들도 세월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여년 동안 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시편들은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노래들입니다.

그의 시와 시어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강해 번역해 그 뜻을 알리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랍니다.

아무튼 그가 새로 낸 새 시집의 이름이 <오늘 하루만이라도>랍니다. 저는 그 시집의 제목만으로도 그의 시에 빠질 수 있었답니다.

그 시집에 실린 그의 <오늘 하루만이라도>이라는 시의 한 연을 옮겨봅니다.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창으로
샛노란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온다.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내가 아는 나무들 가운데 떡갈나무 빼고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내 위층에 사는 남자가 인사를 하며 층계를 오른다.
나보다 발을 더 무겁게 끌면서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
한 발짝 한 발짝 씩 층계를 오른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번은 활기차게 한번은 차근차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11월입니다.

딱히 나이 뿐만이 아니라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이르면 너나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여느 해와 너무나 다른 한 해를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이따금 저녁 노을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하루보다 다시 맞을 하루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길 때 그 감사는 더욱 커진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감사가 이어지는 당신의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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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my old customers, even though she has rarely visited the cleaners recently, came in last week. She was wearing a very unique mask, which was made of plastic. My wife asked her, “Isn’t it difficult to breathe with that mask on? Don’t you have a cloth mask? It looks stifling.” Her response was: “Of course, it gives me some trouble breathing. But, my husband cannot hear well. My communication with him will be better, when he sees and reads my lips. That’s why I wear this mask.”

My old customers, who had been leading active lives thirty years ago, have become old people now. When I started the cleaners, I was in my thirties. Now I’m in my sixties, and getting closer to seventy.

I know that nobody can go against time. But, current everyday life, in which everybody has to wear a mask until a time which nobody knows, may be more uncomfortable to those who are getting old, I think.

The other day, I heard the news that Dong-gyu Hwang, one of my favorite poets, had published a new book of poems. He is eighty-two years old.

He has been writing poems for almost sixty years and his poems have been undergoing changes over time. Especially his poems in the last 20 years have been songs about himself getting old.

The title i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The title was attractive enough for me to indulge in this book of poems.

As his poems and poetic words have things very Korean, some of them may be lost in translation. Though I’m afraid to do it,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stanza of the poem,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the book.

<Through the window at the landing of the staircase leading to the second floor
A bright yellow gingko leaf is flying in.
A gingko leaf! Who would imagine a dark green leaf?
Among the trees that I know, except oak trees,
Most leaves are desperately beautiful generally just before falling down.
A man who lives on the upper floor is nodding and climbing up the stairs.
Though he drags his feet heavier than me,
He, who never loses his smile whenever he sees me,
Is climbing up the stairs step by step.
Right, he and I, both are like leaves just before falling down!
After waiting for his climbing up a few floor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As Ravel’s Boléro makes dancing repetitions by musical instruments one kind by one kind,
Once briskly, the other calm and orderly,
Let me climb up the stairs step by step.>

It is November now.

At the time when a year is drawing to an end, a flood of thoughts may course through everybody’s mind. This year, it may be even more so, because we all are having a year which is so different from other years.

These days, I so often felt grateful, when I was watching the sky aglow with the sunset. When I saw it as the beautiful scenery which was conveying hope for a new day instead of the past day, the gratitude became even greater.

I wish that gratitude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your life will go on continuously in November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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