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이야기 셋

  • 하나.

“어제 어떻게 지냈니?” 가게 손님 한 분이 내게 던진 물음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아주 조용히… 당신은?”. 내 응답에 그녀의 이어진 질문, “나도 남편과 단 둘이 조용히… 우리 가족들 하고는 Zoom으로 함께 두루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 넌 그렇게 하진 않았니?” 유태계 은퇴 변호사 마나님의 연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그리고 내 응답, “그랬구나,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Zoom으로 함께 했단다.”

어제 추수감사절 오후 한 때, 필라델피아에 아들 내외와 아틀란타에 있는 동생 내외와 조카 조카손주들 그리고  사촌 동생네,  시카고와 워싱톤에 사는 조카들 조카 손주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사는 누이네들과 조카들 모두 Zoom으로 추수감사절을 함께 했다.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늦은 저녁 아이들 전화 인사로 흡족해 하셨다.

지난 일요일 거의 아홉 달 만에 집으로 모셔온 내 딸아이는 거의 상전이다. 뉴욕 맨하턴에서 차를 태운 순간부터 마스크를 써라 창문을 열어라 쉬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갔음 좋겠다 등등. 집으로 돌아와서도 따로 밥상 받기, 거리 유지 하기, 마스크 쓰기 등등 까탈스럽기 그지 없다. 재택근무 중인 아이는 연말까지 내 집에 머무를 요량인데 아내와 내게 내리는 명령들이 단호하다. 나는 그런 딸애가 참 좋다.

어제 추수감사절 밥상은 딸아이 혼자  다 차렸다. 고모들네 저녁까지 넉넉히. 아이의 손 솜씨가 제법이었다.

이젠 시집 갔으면 좋겠다.

Screenshot (8)a

  • 둘.

추수감사절 앞에 받은 옆서 한 장. 우리 부부에겐 영원한 우체부인 Johnson씨가 보낸 은퇴 인사였다.

내 세탁소 바로 뒤편에 있는 Newark 우체국에서만 만 36년동안 일했던 그가 은퇴한다는 인사 엽서를 보며 한 동안 찡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이즈음은 검은 얼굴에 허연 머리털과 풍성하고 흰 수염으로 마치 산타가 다 된 노인이 되었다만 참으로 억척스런 사내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서로 비슷해 친구 같은 이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땐 우체국 일이 끝나면 그로서리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다듬는 등 억척스레 애비 노릇을 다했던 사람이다. 보답이랄까? 아이들 모두 정말 잘 컷다.

그가 일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일에 충실했다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그는 좋은 소식보다는 귀찮고 듣기 싫은 소식들을 더 많이 전했었다. 내가 가게에서 주로 받는 편지들이란 거의 대부분 각종 공과금 고지서나 공공 기관들에 서 보내온 서류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따지고 보면 그런 소식들에게 응답했기에 내게 오늘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감사로 응답하는 일은 당연할 터.

그의 은퇴에 박수를, 그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삶을 위해 기도를.

DSC01335a

추수감사절 아침에 읽은 블룸버그 발 뉴스 하나.  <정말 힘든 시간들- 재택근무 시대가 세탁업을 조이고 있다. ‘Ugly, Ugly Time’: Work-From-Home Era Crushes U.S. Dry Cleaners>라는 제목의 기사다.

팬데믹 이후 자영업들이 겪어 오는 어려움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백신이 개발되어 공급되고 치료제가 일반화 되면 식당업이나 호텔 여행업 등등은 다시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지만, 세탁업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상당 부분 나는 그 기사 내용에 동의한다. 지난 구 개월 사이 6개 중 한개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거나 도산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을것이라거나, 여전히 평상시의 반도 못 미치는 매출을 기록하는 업소들이 대부분 이라는 상황 인식에도 동의한다.

오랜 재택근무의 경험들로 사람들의 의복 습관이 달라져 세탁업이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가지.

추수와 절기는 때가 있듯, 모든 업종 역시 부침의 때가 있겠다만, 감사란 늘 나에게 달린 일.

뉴스가 내 추수감사절을 범하진 못한다.

capture-20201127-193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