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좀 바꾸어 보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두루 찾아 보았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만족한 것을 선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노인보험인 메디케어 쪽에서 아내는 아직 일반 보험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야 하니 시간도 제법 쓰인다.
우리 내외의 현재 건강상태에서 보험료는 최소화하되 혜택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욕심을 채우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내린 선택, 그저 내 만족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내외에겐 벅찬 고구마 한 상자를 받아 든 지도 여러 날, 그 동안 찌거나 쪄서 말려 먹기도 했지만 양은 줄진 않는다. 오늘은 고구마 고로케를 만들어 두 누이네와 나누다. 내친 김에 밀가루와 찹쌀가루로 만든 꽈배기가 스스로 대견할 만큼 제 맛을 내었다. 재밌다.
오후에 한인 사회의 내일을 고민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모임에 잠시 얼굴 내밀다. 어느 사회나 변화는 꾸준한 이들에 의해 온다. 그 점에서 나는 언제나 변방이다. 스스로 참 아쉽다.
엊그제 아침 한참 일에 빠져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어 습관으로 던진 ‘좋은 아침, 세탁소입니다.’라는 인사에 킬킬거리는 웃음이 답으로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말 인사였다. ‘참, 형은 변함없네! 아직도 세탁소 하네! 혹시나 하고 이 전화로 해봤는데… 야… 영원한 해병같은 세탁인이고만…’
두어 해 동안 소식 불통이었던 후배의 안부 전화였다. 어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그가 한 응답이었다.
두 해 전에 신장 수술을 받고 안되겠다 싶어 하던 일들을 접었단다. 그리고 한국엘 나갔었단다. 만만치 않더란다.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노년 계획을 세우는 중이란다. 이 때 쯤이면 나도 은퇴했으리란 생각이 들어 자문도 구할 겸 안부 전화를 했단다.
아직 은퇴계획이 전혀 없는 내가 그에게 건낼 조언일랑은 부질없는 그의 기대였을 뿐이다.
긴 대화 속에서 후배와 내가 한 목소리가 된 순간은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우리들에게도 이를 만큼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한 때(그와 그의 직장 모두) 유수한 언론사 워싱톤 특파원으로 제 삶에 대한 자긍이 넘쳐나던 후배나 늘 천방지축이었던 나나 이젠 하루살이가 되어 마땅한 때에 이른 것이다.
늘 흉내내기인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다. ‘ 하늘소리 사람소리 내 속으로 들으며 하루 살면 고맙지 뭐’
‘형, 암튼 내가 조만간 세탁소로 갈께’ 그의 응답이었는데 그게 또 몇 년 뒤일지는 모를 일이다.
무릇 보험이란 하루살이가 망가질 때를 대비하는 일.
만족은 하루살이를 하는 그날그날 내가 찾아 누릴 몫이다.
해는 짧아도 뜨고 지는 아름다움은 한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