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

뒤 뜰 등나무 그늘과 꽃들이 멋지고 고마울 때가 있었다. 겨우내 이젠 죽었다 싶은 모습으로 앙상했던 가지들에 보랏빛 꽃을 피어 내는 봄의 등나무는 한 때  내 뒤뜰의 여왕이었다.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 아래 반가운 사람들과 둘러앉아 우리 동네 명물인 찐 꽃게 까먹던 추억도 새롭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 등나무 그늘을 좋아하셔서 어쩌다 내 집에 들리시곤 하면 그 그늘 의자에 오래 앉아 계시곤 했다.

그러다 몇 해 전인가 내 게으름을 틈타 등나무 넝쿨이 라일락 나무를 휘감아 더는 그 향내 못 맡게 하는 사건이 인 후 나는 등나무를 거두어 내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등나무의 원뿌리 세 개 중 마지막 제일 큰 놈을 거두었다. 등나무나 라일락이나  모두 한 때 내 뒤뜰의 주인공들이었다만 이젠 없다.

캐낸 등나무 뿌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앉아 있다 떠오른 말 ‘갈등’이다. 칡 갈(葛) 등나무 등(藤)이다. 서로 얽히고 설킨 상태로 배배 꼬여 풀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 땀 흘린 생각을 하니 옛사람들이 오늘의 나보다 훨 낫다.

DSC01084 DSC01093

이즈음 세상 소식은 온통 갈등으로 휘감겨 있는 듯 하다.

어찌 보면 사람사는 세상이란 그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의 연속일 지도 모르겠다.

저녁 나절 모처럼 찾아 온 아들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갈비도 굽고, 삼겹살과 오리도 구워 애비 노릇 해 보았다.

DSC01097DSC01098

이즈음은 그저 서로 조심이 최고라고 아이들은 집안 식탁에서, 우리 부부는 바깥 등나무 식탁에서.

DSC01086

지금 내가 가장 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안 갈등에서 내 휘감기 멈추는 일.

갈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