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하수상하니 별 일을 다 당한다. 한 두어 달 전부터 이상한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모두 채무 징수 회사로부터 날라온 편지였다. 전조(前兆)는 모두 똑같았다. 신용보고 기관들의 경고 메세지를 받은 후 며칠 후에 편지는 어김없이 날라왔다.
그렇게 받아 든 네 건의 편지들엔 채무에 대한 채권자들이 모두 통신회사들이라는 것과 채무 금액이 천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은 모두 내 이름인데 사용자의 거주지가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서부 캘리포니아이거나 남부 텍사스와 알라바마와 중북부 미시건 등이었다. 누군가들이 내 명의를 도용한 것이었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으나 그것도 몇 차례 이어지다 보니 이내 이골이 난 듯 수순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경찰에 보고를 하고, 그 보고 리포트를 받고, 해당 회사들에게 사기 피해자임을 증빙하는 서류들을 준비해 보내고 하는 수순들이다.
큰 금전적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겪어보니 꽤나 성가시고 귀찮고 불쾌한 일이다. 복구가 가능한 일이지만 일시적으로 신용점수 하락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덕분에 새롭게 배운 것들도 많다.
가을이 깊어 가는 징조인지 하늘은 온종일 스산하다. 저녁 나절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까지 제법 비가 내린단다. 이 비에 나무들은 새 옷 갈아 입을게다.
그래저래 온종일 집안에서 지낸 하루다.
저녁상 물리고 마틴 아론슨(Martin Aronson)의 <예수와 노자의 대담> 을 머리에 담아 곱씹다.
<우리는 번잡한 일상생활의 강박 속에서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자연의 은총을 더 믿게 되면, 삶의 혼란과 갑작스러운 파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와 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있다. 보다 명상적이고 온유해지면, 상처가 치유되듯이 자연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루고 사물도 그 조화로운 이치에 따라 치유될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