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단풍놀이 길 나서려 했었다. 오늘 지나면 올 가을도 제 길 찾아 떠나려 할 듯 하여서 였다. 나서려던 길 막은 놈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온종일 비가 추적일 것이라고 떠드는  일기예보였다. 때때로 예보는 정확하기도 하다. 먼길 나서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집에 머무는 덕에 모처럼 참 좋은 친구 내외가 방문하여 이 심상찮은 세월에도 감사히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쩌다 내가 온종일 집에 있을 때면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고구마를 굽거나 찌기도 하시고, 녹두를 갈아 빈대떡을 부치시기도 하셨고, 쑥 갈아 개떡을 만드시거나 바람 떡을 만드셔 내 입이 심심치 않게 하시곤 했다.

딱하게도 나는 입이 짧았고 성격도 모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머니께 던졌던 말이다. ‘에고, 제발 그만 두세요.’

어머니 생각하며 떡을 빚어 본 하루다. 팥소와 녹두소 넉넉히 만들어 저장도 하고, 콩가루, 녹두가루도 준비해 두었다. 올 겨울엔 옛 생각나면 떡을 빚어 볼 요량이다.

그렇게 콩가루와 녹두가루 입힌 인절미도 만들고, 녹두와 각종 너트 갈아 넣은 소에 단호박 쪄 넣은 찹쌀떡과 계피가루 입힌 옷에 팥소 넣은 찹쌀떡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제법 맛있다며 칭찬을 보탰다.

아버지와 두 누이들에게도 배달해 맛을 보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 전 일년 여 알츠하이머 병세로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드시곤 하셨다. 그 무렵 종종 어머니는 육이오 전쟁통 피난길에서 떡장사 하셨던 때로 돌아가 계시곤 하셨다. 어머니가 절박한 기억에 휩싸이곤 할 때였다.

어머니 흉내 내며 떡을 빚은 하루. 어머니와 내가 다른 것 하나. 어머니는 절박했고 나는 여유롭다는.

그저 고마움으로, 어머니 덕에.

*** 오늘 동네 뉴스 하나. 우리들 실생활에 직접 다가오는 변화는 대통령 선거보다는 지역사회 일꾼들 선택에서 먼저 온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사를 마무리하는 말. ‘유권자들은 어차피 지역사회 일꾼들이 내세우는 정책보다 자신들의 선입견이 우선’한다는…

내 책상 위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오늘도 ‘쯔쯔쯔’와  ‘그래 고맙다’를 반복하신다.DSC01266A

선거에

아침 일 나가던 길에 눈에 들어온 선거용 입간판들,  이즈음 사거리 마다 놓여있는 풍경이다.  이른바 선거철이다.

1

우리 동네에서 대통령 후보들 홍보 입간판을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주로 연방 의회 의원 및 주지사를 비롯한 주정부 관리와 의회 등에 입후보한 사람들의 홍보 입간판들이 주를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죠 바이든의 고향이고 보니 이 곳 판세는 워낙 뻔해서 일게다.

죠 바이든의 집과 내 집과의 거리는 10여분 안팎이다. 왈 동네 사람이다. 이 곳에서 오래 산 한인 치고 그와 악수 한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오랜 세월 의원 생활을 하면서 한인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나 역시 몇 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함께 식사도 하고 걷기도 하고,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 기억들이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의 보좌관과 행사를 함께 해 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일이 그리 마뜩잖다. 물론 트럼프는 더더욱 아니다.

엊그제 아내에게 들은 말이다. 내 오랜 단골인 윌리암슨 할머니가 세탁소를 들어섰는데 그녀가 쓴 마스크가 기이했단다. 비닐 마스크 였단다. 아내가 물었단다. ‘천 마스크가 없어요? 그 마스크는 숨 쉬기가 매우 힘들거 같아요.’ 오랜 학교 교직을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그녀가 한 대답이란다. ‘에고, 내 남편이 이젠 귀가 어두워 잘 못들어요. 그래 내가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소통을 한다우. 그래 생각 끝에 이 마스크를 쓴다우.’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람살이 시작한 이래 손 꼽아도 좋을 만큼 몇 안되는 큰 변화의 시대를 너나없이 겪어내는 이즈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시절에 바이든과 트럼프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선거판은 좀 불편하고,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불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선거란 어차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에 솔깃해 나도 한 표는 던진다마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보면 한반도 남북문제를 위해서 트럼트가 낫지 않은가 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는 한다만 그 역시 난 동의할 수 없다. 누가 되어도 마찬가지거니와 대한민국은 이젠 홀로 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즈음 뒤뜰에서 저녁 노을이 만들어내는 하늘에 홀려 오래 앉아 있곤 한다. 하늘에 빠져 있다보면 사람살이엔 분명 그 살이를 다스리는 힘이 있는 듯 하다. 그 힘을 무어라 부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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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또 사는게다.

2

딱따구리가 내 집 나무에서 노는 걸 보니 나무를 자를 때가 되었나 보다.

막대사탕

내 세탁소 카운터에는 막대사탕을 담은 작은 나무접시가 하나 있다. 나무접시는 족히 30년 넘게 우리 부부와 함께 했다. 나무접시에 담긴 막대사탕을 즐기던 아이들이 이젠 중년이 되어 내 세탁소를 찾기도 한다.

올들어 역병 탓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세탁소를 찾는 이들은 매우 드물다. 그래도 막대사탕을 담은 접시는 금새 비어지곤 한다.  이즈음 막대사탕을 주로 집어가는 이들은 노인들이다. 이따금 나보다 족히 세 배는 됨직한 젊은 친구가 사탕 두세 개를 한 입에 넣어 빠그작 소리를 내며 씹을 때면 그 둔한 몸은 전혀 아니지만 그의 건치(健齒)에 이르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달 사이 내 눈에 밟힌 노인 손님 한 분이 있다. 평소 내가 카운터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어 오랜 단골 손님들 빼고는 기억하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다만, 이즈음엔 한가한 탓에 카운터를 차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라고 했지만 내 또래 거나 몇 년 더 산 정도인 사내는 늘 나만큼 허름한 모습으로 두 주에 한 번 꼴로 내 가게를 찾는다. 들고 오는 빨래거리라고는 언제나 달랑 셔츠 두 장이다. 사내가 눈에 띤 것은 막대사탕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그를 맞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서는데 그는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 땐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 세탁소에 올 때 마다 막대사탕을 한 줌 주머니에 넣곤 하는 것이었다. 한 줌이라고 해 보았자 대 여섯 개 정도일 터이다.

어차피 오는 손님 누구나 원하면 집어 가라고 놓아 둔 것이므로 몇 개를 집어가든 상관할 바 아니데, 문제는 그가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나는 그가 가게로 들어서면 그를 위한 틈을 만들어 주곤 한다.

모를 일이다. 그가 사탕을 좋아하는지, 병든 아내를 위해 챙기는 것인지, 손주 녀석들 생각으로 그리 하는지, 내가 또 알면 뭐하랴. 사탕 몇 개로 그가 잠시 삶에 단 맛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일 터.

누군가 접시채로 막대사탕을 다 집어간들 또 다시 채울 수 있는 부요함은 아직 누리고 사니 그저 고마운 오늘이다.

나이든다는 것은 소소한 고마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일게다.

아내와 함께 가을 길을 걷다. 먼 길 나서지 않아도 우리 내외가 넉넉히 즐길 수 있는 가을 풍경이 놓인 오늘의 삶에 또 고마움이 인다.

곰곰 생각해 보니 늘 허름한 내가 막대사탕 하나를 온전히 다 먹은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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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에

세월이 하수상하니 별 일을 다 당한다. 한 두어 달 전부터 이상한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모두 채무 징수 회사로부터 날라온 편지였다. 전조(前兆)는 모두 똑같았다. 신용보고 기관들의 경고 메세지를 받은 후 며칠 후에 편지는 어김없이 날라왔다.

그렇게 받아 든 네 건의 편지들엔 채무에 대한 채권자들이 모두 통신회사들이라는 것과  채무 금액이 천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은 모두 내 이름인데 사용자의 거주지가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서부 캘리포니아이거나 남부 텍사스와 알라바마와 중북부 미시건 등이었다. 누군가들이 내 명의를 도용한 것이었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으나 그것도 몇 차례 이어지다 보니 이내 이골이 난 듯 수순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경찰에 보고를 하고, 그 보고 리포트를 받고, 해당 회사들에게 사기 피해자임을 증빙하는 서류들을 준비해 보내고 하는 수순들이다.

큰 금전적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겪어보니 꽤나 성가시고 귀찮고 불쾌한 일이다. 복구가 가능한 일이지만 일시적으로 신용점수 하락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덕분에 새롭게 배운 것들도 많다.

가을이 깊어 가는 징조인지 하늘은 온종일 스산하다. 저녁 나절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까지 제법 비가 내린단다. 이 비에 나무들은 새 옷 갈아 입을게다.

그래저래 온종일 집안에서 지낸 하루다.

저녁상 물리고 마틴 아론슨(Martin Aronson)의 <예수와 노자의 대담> 을 머리에 담아 곱씹다.

<우리는 번잡한 일상생활의 강박 속에서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자연의 은총을 더 믿게 되면, 삶의 혼란과 갑작스러운 파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와 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있다. 보다 명상적이고 온유해지면, 상처가 치유되듯이 자연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루고 사물도 그 조화로운 이치에 따라 치유될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 밤에.

기도(祈禱)에

‘부인과 가족 모두 편안 하신지요?’ 이즈음 오랜만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내가 건네는 인사를 받은 Tom은 대답대신 똑같은 질문을 내게 다시 던졌다. ‘네 아내는?’, ‘네 아들과 딸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낸다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그와 나 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세탁소 카운터를 휘 돌아보고는 낮고 여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한참을 이어간 이야기다.

그의 맏딸은 올해 마흔, 내 또래인 Tom은 어린 맏딸과 함께 내 세탁소를 찾았던 오래 전 이야기들을 되짚으며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당연히 내가 기억한다는 뜻으로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했다.

그의 딸과 사위는 제법 반듯한 회사원들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COVID 상황이 일어난 이후엔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단다. 둘 사이에서 얻은 Tom의 외손주들은 셋이고 그의 긴 설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그의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그 외손들 가운데 하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단다. 나머지 아이들과 딸과 사위도 염려란다.

그의 아내는 딸네 집엘 가봐야겠다고 하지만 딸과 사위가 펄쩍 뛰어 그저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걱정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다른 손님이 가게로 들어 오기까지 나는 그의 긴 이야기들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가게를 떠나며 그가 나직하게 내게 던진 말, ‘기도 좀 해 주렴.’

하루가 지난 저녁, 지는 해와 쉴 곳 찾는 구름과 빠르게 도망치는 비행기와 새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리고 때때로 내 귀를 여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는 혼자 말, ‘젠장, 내 기도 빨에 힘이 있어야지…’

그럼에도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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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友情)으로

살며 잠시라도 스쳐 지나간 연이라도 닿았던 이들이 세상 뉴스를 달구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이즘 세상에선 아직 노년이라고 말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중년이라고 말하기엔 겸연쩍은 나이여서 조심스럽다만 이쯤 살다보니 누군가의 삶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에 대한 잣대는 굳어진 상태이다.

나는 옛 친구들이 옛날 내가 알고 있는 모습대로 늙어가는 소식을 듣거나 보노라면 참 좋고, 그가 잘 살았다는 느낌을 받는 편이다. 물론 사람 냄새가 나는 옛 추억에 근거해 하는 말이다.

며칠 동안 이일병이라는 이름이 한국뉴스로 내게 다가왔다. 어릴 적 캠퍼스에서 잠시 알고 지낸 친구다. 하여 뉴스들을 두루 훑어 보았다. 그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지극히 자신에게 충실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 사는 소시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답게.

솔직히 그 때나 지금이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만, 그게 무슨 문제랴! 그는 그 답게 나는 나 답게 살면 그만인 것을.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들이 어렸던 시절 그는 프로파간다적 행위나 행태들을 매우 싫어했던 매우 자유주의적인 친구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놀랄 만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 변화에 걸맞게 그저 옛 모습 간직하며 사는 그의 오늘에 화살을 쏘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좀 불편하다.

그의 노년이 그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시간들이 되길 빌며… 옛 우정으로.

갈등(葛藤)

뒤 뜰 등나무 그늘과 꽃들이 멋지고 고마울 때가 있었다. 겨우내 이젠 죽었다 싶은 모습으로 앙상했던 가지들에 보랏빛 꽃을 피어 내는 봄의 등나무는 한 때  내 뒤뜰의 여왕이었다.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 아래 반가운 사람들과 둘러앉아 우리 동네 명물인 찐 꽃게 까먹던 추억도 새롭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 등나무 그늘을 좋아하셔서 어쩌다 내 집에 들리시곤 하면 그 그늘 의자에 오래 앉아 계시곤 했다.

그러다 몇 해 전인가 내 게으름을 틈타 등나무 넝쿨이 라일락 나무를 휘감아 더는 그 향내 못 맡게 하는 사건이 인 후 나는 등나무를 거두어 내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등나무의 원뿌리 세 개 중 마지막 제일 큰 놈을 거두었다. 등나무나 라일락이나  모두 한 때 내 뒤뜰의 주인공들이었다만 이젠 없다.

캐낸 등나무 뿌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앉아 있다 떠오른 말 ‘갈등’이다. 칡 갈(葛) 등나무 등(藤)이다. 서로 얽히고 설킨 상태로 배배 꼬여 풀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 땀 흘린 생각을 하니 옛사람들이 오늘의 나보다 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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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세상 소식은 온통 갈등으로 휘감겨 있는 듯 하다.

어찌 보면 사람사는 세상이란 그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의 연속일 지도 모르겠다.

저녁 나절 모처럼 찾아 온 아들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갈비도 굽고, 삼겹살과 오리도 구워 애비 노릇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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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은 그저 서로 조심이 최고라고 아이들은 집안 식탁에서, 우리 부부는 바깥 등나무 식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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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가장 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안 갈등에서 내 휘감기 멈추는 일.

갈등에.

게으름

이즈음 나는 많이 게으르다. 여느 해 이 맘 때이면 장사 나가는 아침은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을 터.

오늘도 게으른 아침, 이미 훤한 아침 햇살에 밀려나는 서편 구름 사이로 음력 팔월 보름달이 노닌다. 그 노는 모습에 한참을 넋 놓다. 이젠 이런 게으름이 싫지 않다. 흐음… 이젠 정말 나이 들어 가는 게다.

게으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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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다른 건 몰라도 COVID-19 전염병에 이르면 한국은 내가 사는 곳에 비하면 가히 천국이다. 천국이 과하다면 그야말로 청정지역이라고 말해도 좋다. 어제 이 곳 주지사는 전염병 이차 파동을 준비해야 한다며 심각한 지금의 상황을 들어 주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속적으로 하루 80여명 신규 확진자 수를 지속하던 상황에서 최근 한 주간 하루 110여명 꼴로 그 수가 늘고 있는 상황이란다. 마치 이즈음 한국 상황과 엇비슷해 보이기도 한다만, 여기는 인구 백만 명이고 한국은 오천 만명이니 이미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내 가게가 있는 도시의 시의회는 며칠 전 실내 모임인 경우 12명, 실외 모임인 경우엔 20명으로 제한하는 현재의 모든 모임 인원 제한 규정을 지속하기로 결정 했단다.

특히 젊은이들이 문제란다. 규정을 어기고 이런 저런 모임이나 잔치자리들을 즐기며 확진자 수를 늘리고 있단다. 젊은이들은 전염병에 걸려도 병원신세를 지지 않고도 회복이 가능하곤 하지만 노인들이나 기저질환자들에겐 치명적이어서 문제란다.

식당업은 여전히 평시보다70% 이상의 매출 감소 상황이 지속되고 있단다. 내 업인 세탁업도 여전히 평소 매출의 50%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훑다 보면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꽤 길어질 듯 하다.

은퇴 수순을 밟는다 한들 이르다 할 수 없는 나야 그리 큰 문제도 아니거니와 , 제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여도 그 역시 내 이야기가 된다는 보장도 없으므로 지금에 상황이 그리 걱정될 일은 없다. 그저 다만 아이들 걱정이지.

새들의 노래소리와 나비의 춤, 가을 꽃들의 정취에 취해 흐르는 구름과 지는 해 넋 놓고 바라보며 이런저런 시름 떨치지 못하며 맞는 시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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