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木)의 노래

이른바 불알친구들은 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수 십 년 만에 어쩌다 목소리를 들어도 서로간 이내 옛날 날(生) 모습으로 돌아간다.  내 경우에는 신촌 고향 친구들과 고등학교 이전 친구들이 대개 그러하다. ‘쨔샤’, ‘새꺄’ 등의 호칭이 절로 나온다.

청년 시절 이후에 만난 친구들은 아무래도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 각기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기 마련이다. 물론 내 경우에 한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스물 무렵,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 대 초반에 연을 쌓았던 친구들이 있다. 친구 뿐만 아니라 선후배 나아가 많은 선생님들까지 대개의 경우 내 삶에 큰 스승들이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의 교류는 내 삶에 누렸던 큰 축복이었다.

그 시절 우린 모두 동지(同志)였다. 유신 철페, 독재 타도, 민주화, 통일의 담론들로 뜻이 엇비슷했던 만남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시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세상을 뜨셨고, 친구와 선후배들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제  저녁 노을 길들을 걷고 있다.

그 시절 벗들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떠나와 살고 있는 나는 늘 부끄럽다.

그 숱한 얼굴들 가운데 내가 아는 한. 그 스물 무렵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 온 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이민을 오던 그 무렵 그는 빈들로 나아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는 빈들에서 머물고 있다.  그 곳에서  <누군가 만져주>고 <누군가의 손을/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서 <나무>처럼 살아 왔다. 노동자,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그 나무 아래 함께 하는 빈들에서 오늘도 머문다.

그 긴 세월 나는 그를 본 적은 없다. 종종 전해 듣는 소식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는 조금 이른 은퇴를 했다. 듣기로는 젊은 시절 겪어낸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다고 했다. 그가 은퇴 후 시집 한 권을 펴냈다. 그의 자전 시집이란다. 시집 제목이 <바닥이 하늘이다>이다. 그 답다.

그의 시집을 넘기며 그가 부른 삶의 노래들을 듣는다. 그 중 하나이다.

<나무>

한 곳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 서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지나 보낼지/ 바람을 맞을지

당신의 사랑은 그런 것인가요/ 한 곳에 서서 한 곳만을 향하여/ 항상 손을 벌리는 것….

– 중략 –

하늘이 좁아/ 가리고 싶은 마음으로/ 넓게 안테나를 세우고/ 모든 것을 끌어 안으려는 마음/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작은 소리에도 상처 받으며/ 견디고 또 견디며/ 뿌리 내리는 것

-중략 –

누군가 만져주지 않으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는 / 외롭고 쓸쓸한 사랑

그래도 모든 것을 주기 위하여/ 긴 세월을 참으며/ 무심하게/ 누군가의 손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 노래하며 춤추며/ 기도하며 바라며

긴 세월 올곧게 빈들에서 머문 그는 이미 신이 믿고 쓸만 한 거목이 되었다. 신은 그를 잘라 참 좋은 교회당 하나 지으실만 하실게다.

마루 깔고 남은 잡목으로 나 혼자 즐길 의자 하나 만들어 놓고 낄낄대는 내게 이렇게 거목이 된 벗 하나 있다는 건 오로지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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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복목사. 그의 건강과 아직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바닥이 하늘>인 세상을 위해 나름 꿈꾸며 사는 후배들과 함께 그의 자전적 시집을 나누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