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들어 ‘가족들은 모두 평안하시지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늘고 있다. 지난 삼월 이래 처음으로 내 세탁소를 다시 찾는 손님들이다. 그렇다 하여도 가게는 여전히 한가하다.
그 한가함을 달래기 위해 놀이 삼아 시작한 deck과 patio 만들기도 거의 끝나간다.
놀이를 하다 문득 떠올린 고마운 얼굴이 하나 있다. 그가 없었으면 내가 감히 이 놀이를 시작할 엄두를 못 냈을게다. 그는 참 조용한 사람이었다.
삼십 수 년 전 이민을 온 이후 한 동안 나는 이 곳에 잘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힐 무렵 우연히 아파트 입구 우체통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한국 분이세요?’ 그가 내게 건넨 첫 인사였다. ‘저는 조용합니다.’ 그는 그의 이름 조용하처럼 정말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튿날부터 그를 쫓아 다녔다. 주택 공사장에서 외벽을 붙이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못질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내겐 신세계였다. 그렇게 망치와 톱을 손에 쥐고 사는 하루 하루를 즐겼다. 이년 조금 넘는 세월을 그와 함께 했었다.
남자 형제가 없는 나는 누군가를 형이라고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 더더욱이나 이민 이후엔 아주 없다. 매형 한 분 빼 놓고는 형이라고 부르는 이는 조용한 사람 딱 한 사람이다. 내가 여기서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데 큰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deck 만드는 놀이를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살며 연을 쌓은 모든 만남들이 따지고 보면 삶에서 느끼는 고마움의 원천이어야 할게다.
펜데믹으로 하여 올 봄 평생 처음 뿌려 본 꽃씨들이 꽃이 되어 내 뜰에 나비들이 노닌다.
가게 매상은 여전히 반 토막을 채우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서로간 가족들 안부를 묻는 손님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놀라워 놀라워, 도대체 믿기질 않아! 도대체 쬐그만 당신이 어떻게 혼자 저렇게…’ 이웃집 안주인이 던지는 호들갑 인사가 싫지 않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