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整理)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일요일,  온종일 집안에서 보냈다. 맞이하는 한주간 날씨예보는 연일 체감온도 100도를 오르내릴 것이란다. 정상적인 사람체온을 웃도는 수치이다. 허기사 여름인데 이런 더위를 한 두 번 겪은 나이도 아니고 이 또한 곧 지나갈게다.

이즈음 틈나는대로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며 산다. 정리라곤 하지만 안고 살아 온 쓰레기들을 버리는 일이다.

두 해 전이었나, 세 해전이었나? 어느새 멀리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정확한데 가까운 일일수록 가물하다. 아무튼 계절로 보아 이즈음 이었을게다.

필라에 사는 참 좋은 벗이자 인생 선배인 김경지형이 ‘집정리를 하는 중인데 김형(나)에게 줄만한 책들이 있어 원하면 갖다 드리려 고…’ 하는 전화를 주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경지형은 많은 책들을 내 집에 부리고 가셨다. 그 중 불교서적들은 이즈음도 내가 이따금 손에 들며 감사한 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다 오늘 문득 그 때 집 정리하던 경지형 마음을 꿰뚫게 되었다. 그이 보다 조금 늦게 깨달은게다. 조만간 조촐하게 책장 하나 남기고 정리해야겠다.

그 맘으로 지하실에 쌓아 둔 서류뭉치들을 정리하다가 눈에 뜨인 신문 한 장이다. 따져보니 벌써 이십 오 년도 넘게 지난 세월 저 쪽 이야기다. 한인들 이야기를 실은 동네신문이었다. 당시 어찌어찌 내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사화 되었었다. 생각해보니 꿈 많았던 세월이었다. 당시만해도 한국 뉴스는 담쌓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내 나름으로 간직한 한국을 품고 미국시민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유민이 아닌 주인 되는 이민’운운 하며 살던 때였다.

누군가의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고 하지.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고.

지난 주간에 손님 둘이 각기 신문 한 장 씩을 들고 내 세탁소를 찾았었다.두 사람이 들고 온 신문은 공교롭게도 모두 ‘The Wall Street Journal’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둘 다 내 또래의 백인들이고 한사람은 남자 한 사람은 여자다. 둘 다 전형적인 우리 동네 중산층에 속한다.

남자가 들고 온 기사내용은 탈북자 노철민이 부패한 북의 모습을 토로하는 기사였고, 여자가 들고 온 기사내용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다. 어느덧 노회해진 나는 적당히 죽을 맞춰 그들의 관심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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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각기 남긴 말들이다. ‘북한은 역시! 근데 요즘 애들은 안 믿지…’, ‘아니, 좋은 일 참 많이 한 사람인데 그깐 스캔들 따위로 죽다니… 쯔쯔’

형편없는 대통령 트럼프가 딱 잘 한 일 하나 들자면 북한에 대한 뉴스를 안 믿는 미국인들이 많아지게 했다는 것 아닐런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람마다의 생각 차이…

곰곰 따져보니 내게 외국은 비단 과거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지금 여기 말고는 모두가 외국 아닐까? 내게는…

정리는 버린다고 되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