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연휴 이틀 동안 무념무상으로 일에 빠져 지냈다. 일을 마무리 짓고 나니 온 몸이 천근 만근 이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했다.
이 집에서 산 지 만 23년이 지났다. 이 집에서 내 두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지만 이젠 아이들이 머무르는 일은 거의 없다. 매해 때 되면 어머니 아버지와 장모 장인 모시고 밥상을 나누던 추억들도 쌓인 곳이지만 이젠 다 떠나시고 아버지 홀로 신데 거동 불편하셔 내 집에 오실 일은 없다.
올 초만 하여도 나는 조만간 우리 부부가 조촐히 살기 적합한 작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맞이한 팬데믹 상황에서 내 일상도 바뀌고 계획도 바뀌었다.
갑자기 넘쳐난 시간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일들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텃밭과 화단을 가꾸어 보는 일을 시작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카펫을 들어내고 마루를 깔기 시작한 일도 그 중 하나이다. 그저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하자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자꾸 늘어져 아니되겠다 싶어 연휴 이틀간 맘먹고 마무리를 지었다.
카펫을 들어내면서 방안의 물건들을 옮기다가 시작한 또 하나의 일은 버리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이 버렸다. 버리면서 든 생각 하나, 쓸데없거나 과한 것들 정말 많이도 끼고 살았다.
마루를 새로 깔며 마주했던 격한 감사들도 있다. 묵은 카펫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먼지처럼 나와 더불어 함께 지내온 세월에 대한 감사와 아직은 이만한 노동이 그리 버겁지 않은 오늘의 내 나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어느 날 모처럼 하루 밤 자고 갈 아이들이 변한 방 모습에 웃는 얼굴을 그려보며 느끼는 감사였다.
일을 마무리 짓고 가구들을 원래의 위치로 놓으려 하다 바뀐 생각 하나가 있다. 방 하나는 그저 텅 빈 채로 나두자는 것이었다. 뭐 딱히 법정스님을 흉내 내어 보자는 뜻은 아니다만 문득 텅빈 방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라는 법정의 말이 그대로 내 마음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동안 나는 이를 즐길 것이다. 또 어떤 변덕이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만.
어쩌면 텅 비우는 연습이 아니라 실전을 해야만 하는 나이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기에.
딸아이에게 바뀐 딸아이 방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보내온 답신이다. ‘다음엔 뭐해? 아빠!’ 나는 즉시 응답했다. ‘물론 계획이 있지! 또 보여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