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18

곡기 끊으신 지 딱 한 달 째이다. 과일즙을 끊으신 지도 한 열흘. 엊그제부터는 물까지 끊으셨다. 어머니와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나 보다.

어머니는 여전히 곱다. 모두 세심히 곁에서 보살피는 내 누나 덕이다. 이따금 육이오 전쟁통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가곤 하는 알츠하이머 증세조차 어머니에겐 마지막 좋은 벗일 수도 있다. 다섯 살 첫 딸을 피난 길에서 잃고, 전쟁터에 나갔던 아버지는 상이 군인으로 돌아왔던 그 시절이 어머니는 평생 아팟었나 보다. 종종 그 시절로 돌아가 우리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

날짜를 꼽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두루 어수선하다. 허기사 늘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딱히 분주할 일은 없다.

‘하필 이 때….’라는 원망 섞인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만 아흔 세 해를 넘기신 어머니와 함께 하신 신에게 드릴 일은 아니다.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 내 어머니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지금의 서울시 한남동이다. 내 어릴 적 어머니는 내 손 꼭 쥐고 친정행을 하시곤 했다. 신촌 버스 종점에서 한남동 버스 종점까지 서울역에서 버스 한 번 갈아타고 가는 길, 나는 버스만 타면 졸았었다. ‘넌 버스만 타면 졸았지!’ 내가 서른이 넘을 때까지 들었던 어머니의 푸념이었다.

오늘 낮에 어머니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내게 건넨 말, ‘얘야! 가지 마라.’ 나는 웃으며 답했다. ‘내가 가길 어딜 가요. 항상 여기 있지.’어머니는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곧 자리를 떳다.

지난 해 어느날엔가 아버지는 당신들께서 세상 떠나는 예배를 드릴 때 읽어야 할 성서구절과 찬송을 적어 내게 건내셨다. 오늘 집에 돌아와 한참을 그 기록을 찾느랴 시간을 보냈다. 잘 간직한다고 놓아두면 그 놓아둔 장소를 잊곤 한다. 딱히 나이 탓은 아니다. 예전부터 있어 온 습관이므로,

아버지가 지정해 둔 찬송은 새찬송 609장 ‘이 세상 살 때에’다. 그 1절 가사다.

<이 세상 살 때에 수고와 슬픔/  나그네 인생길 빨리 지나네/ 돌아갈 고향은 주님의 나라/ 주께서 예비한 주님의 나라>

어머니의 하루가 지고 있다.

하루 – 17

내 생각보다 빠르게 주지사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그 동안 영업이 정지되었던 일부 업종들이 문을 열 수 있단다. 일부 업종이라고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업종들이 거리두기 등의 준수사항들을 지킨다면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부터는 내 세탁소도 정상영업을 해야겠다. 느낌이 왔었나보다. 아침 일찍부터 텃밭 만들기를 오늘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을 떨었다. 그리고 오후에 들은 주지사의 결정이었다.

열무, 배추, 고추, 파, 양파, 상추, 쑥갓, 들깨, 토마토, 오이, 가지, 시금치, 아욱 등의 채소와  백일홍, 금잔화, 데이지, 물망초, 칸나, 라벤다, 야생화 등의 화초 씨와 모종을 뿌리고 심는 일을 마치고 난 후 들은 소식이다.

이젠 평범한 일상 맞이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다가 재밌는 기사 하나 눈에 뜨여 읽다가 문득 옛 생각으로 웃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기사의 제목이었다. ‘듀퐁가(家)의 저택 돌담장 위엔 왜 둘쭉날쪽한 유리조각이  박혀 있을까? Why does a duPont mansion have a stone wall topped with jagged glass shards?’

내가 사는 델라웨어주는 한때 듀퐁주로 일컬어 질 만큼 듀퐁 가문의 위세가 한세기를 넘게 떨친 곳이다. 듀퐁가문의 시조격인 Alfred I. duPont이 유리조각들이 박힌 돌담장으로 둘러 쌓인 저택을 지은 때는 1901년, 당시 건축비가 2백만 달러. 오늘로 환산하자면 약 오천 삼백만 달러였단다.

제법 긴 기사를 소개할 필요는 없고, 10피트(약 3미터)나 되는 높은 담장에 유리조각들을 박은 까닭은 외부의 도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내부의 가족들 간의 분쟁 탓이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들의 감옥을 만들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듀퐁가는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가족 분쟁기사들을 만들어 내곤 한다.

내가 기사를 읽으며 웃은 까닭은 내 어릴 적 기억에 남아 있는 담장 위에 박힌 유리조각들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신촌엔 기와집들과 초가집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서교동으로 넘어가는 언덕받이에는 루핑집들 이른바 하꼬방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제2한강교가 들어 설 무렵 그 하꼬방들은 이층 양옥집들로 바뀌면서 동네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옥집을 둘러싼 시멘트 담장 위엔 어김없이 유리조각들이 박혀 있거나 둥그런 가시철망들이 얹혀 있곤 했다.

내가 이리도 그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내 첫사랑이 그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에 흰 얼굴이 잘 어울렸던 그 아이가 사는 집 담장에도 유리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십 수년 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에서 다시 만났었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교회를 갔다 온 아내가  뜬금없이 건넨 말이었다. ‘자기 첫사랑이 여기 온대! 곧 만나겠네.’

사연인즉, 그 얼굴 하얀 아이의 동생 부부가 교환교수로 이 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동생 부부를 방문하러 온다는 것이었고, 그 동생과 아내가 언니와 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맞추다 보니 딱 맞아 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 얼굴 하얗던 아이와 그렇게 만나 저녁을 함께 했었다. 그 아이의 가족들과 내 아내는 놀리기에 급급했지만, 그 아이와 수 십년 전 유리조각 박힌 돌담장 집에 살던 아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 웃었다.

다시 돌아가는 일상의 어느 날, 내 채마밭에서 밥상이 차려지고 화단의 꽃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웃는 모습을 그리며….. 또 웃다.

5-5-20

하루 – 16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 중략 –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反響室, echo chamber, 메아리방)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제15장 ‘무지’에서

오월이다. 여전이 비일상적인 생활이 계속되고 있지만 오월은 오월이다. 화사하다.

총을 차고 미국기를 흔들며 모든 가게들은 정상영업을 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해야 한다는 시위대 소식과 연일 늘어나는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들이 동네신문 온라인판 헤드를 함께 꾸미고 있다. 주지사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조금은 강경한 편이다.

내 가계경제(家計經濟)와 어머니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면 나 역시 빨리 모든 것들이 정상화 되기를 바라지만, 공동체 사람살이로 보자면 조금은 진득해 질 때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이즈음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빠르면 앞으로 두어 주, 길어야 한달 안짝으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이전처럼 다시 세탁소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게 될 듯하다.

마음이 급해지는 까닭은 마구 뒤집고 파 놓은 채마밭과 화단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뿌린 씨앗들과 심은 구근 들에서 파란 싹이 올라오고, 옮겨 심은 모종들의 하루가 궁금한 이즈음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내 삶에 찾아 온  새로운 걱정이다.

생각컨대 아마도 내 일상은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달포 전 신문에 게재된 유발 하라리의 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처음 읽었을 때 떠올랐던 말은 ‘변곡점’이었다. 그것이 역사의 변곡점이든 내 개인적 삶의 변곡점이든 이즈음 내가 살아가고 있는 COVID -19  상황은 분명 하나의 큰 전환점임에 분명하다. 그 무렵 책장을 덮었던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느꼈던 그에 대한 생각의 연장이었을 수도 있다.

이즈음 COVID 이후 경제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넘쳐나지만, 유발 하라리의 지적은 사람살이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운 좋게도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벗들이 있다. 이건 분명 내가 누리는 더할 수 없는 축복이다.

벗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요 며칠 동안 하라리의 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꼼꼼히 곱씹어 읽다.

혹시 관심있는 이들을 위하여 원문 링크와 번역한 글을 드린다.

무릇 이전(以前)과 이후(以後), 모든 시간들은 그 하루를 사는 이들의 몫이다.

https://amp.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영문)

https://docs.google.com/document/d/1lIU7c1JRVQ1D4W5n7vBY8CGCOQPJtSMlu6hfSvkmG-o/edit?usp=sharing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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