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천국 앞 도로가 교통체증이 심해서 장례를 치르려면 좀 시간이 걸립니다.’ 장의사 직원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모두가 하수상한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 탓이란다. 우선 이즈음 돌아가시는 이들도 많거니와 묘지에서 안장하는 수를 극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머니의 장지는 십여 년 전에 미리 준비해 놓았었다. 모두 어머니 생각이었다. 이왕 당신 묘 자리 마련하는 김에 너희들도 다 한 자리 씩 준비하거라 하는 말씀에 가족 묘 자리를 준비했던 터였다. 아버지 어머니 나 아내가 한열로 그 아래 열에 매형 누나 막내매제와 동생 순으로 누울 자리를 마련하였었다.
그 묘지공원에서 이즈음에 주중인 월요일에서 금요일에 낮 열 두 시 단 한차례 한사람만 모신단다. 하여 내 어머니의 입장 순서가 정해졌는데 가히 국장(國葬)급 예전(禮典)인 9일장으로 치루게 되었다.
세상 일 다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일 터. 바이러스로 세상 일찍 떠나시는 이들과 가족들에겐 정말 송구해서 할 말은 아니다만, 그 또한 내 어머니 마지막 누리시는 복이다.
또 한가지 장의사에게 들은 설명이다. 장의사(funeral home)에서 치루는 마지막 인사(viewing)와 예배에는 참석인원 10명을 초과하지 못하고 주어지는 시간은 최장 두 시간 이내여야 하고, 묘지 안장 역시 참석인원 10명 이내여야 하고 시간은 20분을 넘지 않아야 한단다.
우리 가족들만 다 모여도 30여명인데…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기도 하여, 예식에는 우리 삼 남매 부부와 어머니의 막둥이 손자와 목사님 두 분 모시고 예식을 치루기로 했다. 머리 속에선 이즘 유행하는 zoom meeting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꽉차 있었다만 그래도 명색이 맏상주인 내가 zoom meeting을 한다고 왔다갔다 하기엔 그게 영 마뜩치 않아 차마 입을 열지 못하였다.
허나 그게 다 모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막둥이 손주놈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 했더니 ‘걱정 말라’며 손주들 끼리 다 알아서 할머니와 가족 기록 영상도 만들고 zoom 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터이니 염려 놓으란다. 하여 조지아 아틀란타 동생 식구들과 시카고, 워싱톤, 뉴욕, 필라델피아와 서울에 있는 손주와 증손들까지 모두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때때로 내 나이를 잊고 산다. 아이들이 그걸 깨닫게 해 준다.
내 어머니 최신의 소통 방법으로 인사 받으며 떠나시게 되었다. 이 또한 생각 나름. 어머니가 누리시는 복일게다.
오늘 어머니 사진 내 책상 가까운 벽에 걸었다.
‘오늘 하루 잘 보냈습니다.’ 인사 드린다.
이제 어머니의 하루는 새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