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내 조로(早老) 탓인 줄 알았다. 어머니 보내고도 눈물 나지 않아 내 눈물샘 마른 줄 알았다.

만 하루 지나 터져 흐르는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내 눈물샘을 터트린 이는 내 신앙의 스승이자, 삶의 선생, 우리 부부의 연을 맺게 한 이, 이제 늙으막 초입에 선 나의 길동무를 자처한 사람 홍길복목사다.

어제 밤 어머니 보내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독주 몇 잔 마시고 옛날에 내가 그에게 투정 부리듯 인사 몇 자 올렸더니 그가 보내온 예전처럼 따스한 위로다.

그 위로에 터진 눈물샘이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 까닭은 슬픔이 아닌 넘치는 행복이 겨웠기 때문이다.

내 평생의 길동무이자 선생 하나 있어 느끼는 이 행복, 모두 어머니 덕이다.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느님,
93년전 이 땅에 보내 주시어
삶의 한 부분을 함께 했던
주님의 딸을 어제 마침내 영원한 나라로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전 조국 신촌 작은 집과 도장가게에서
가끔 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심방을 가서 기도도 드리고
어려웠던 시절, 함께 음식도 나누면서
인생의 한 부분을 같이했던
그 때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한남동이나 신촌이나 조국 땅, 그 어느 곳이 아닌
영원한 주님의 나라로 영구 이민을 떠나신 어머님,
보내주시기도 했고
다시 불러 주시기도 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다시는 눈물과 아픔이 없고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지 아니할
영생의 나라, 평화의 나라에서 안식하시옵소서.

이젠 어머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진 못하고
언젠가 저희가 찾아 뵙겠습니다.

어머니가 계셨기에,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좋은 후배 영근이 부부와도
인생길의 동행자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이별에는 슬픔이 있지만
그래도 약속 있는 이별에는 희망과 다짐이 있기에
어머님을 보내는 허전한 마음 뒤켠엔
눈물 뒤에 오는 감사와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니
부디 편안히 가시옵소서.

오늘 저는 어머님께
Good Bye라고 인사드리지 않고
이렇게 인사올림니다.
See you soon !
See you again in Heaven !

신촌이나 델라웨어에서는 뵙지 못해도
주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

사랑과 존경을 드리며

시드니에서

신앙과 인생을 뒤 따라 가는
홍길복드림.


 

행복에.

천수(天壽)

‘이눔아! 넌 맨날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이 많냐?’ 어머니에게서 자주 듣던 핀잔이다. 그러고보니 참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하고 살았다.

지난 며칠 동안 어머니 곁에서 정말 모든 쓸데없는 생각 내려놓는 맛을 보았다.

어머니의 숨소리에 얹혀져 전해 온 어머니의 세월과 나의 세월들이 그 숨소리의 강약과 편함과 힘듬과 거침과 고요함에 따라 내 생각들이 마구 뒤섞여 오갔지만 결코 쓸데없는 생각에 빠진 시간은 없었다.

오로지 어머니의 마지막 편안함을 위해 모든 쓸데없는 생각 버리고 어머니와 함께 숨 쉬었던 시간이란 따져보면 고작 몇 시간.

그 시간들을 허락해 주신 어머니와 신께 드리는 감사가 크다.

천수(天壽)를 누리신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고요함과 평안이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내 성격에 얼마나 갈 줄 모를 일이다만 쓸데없는 생각 들 때마다 어머니 생각 하련다. 나 사는 날까지.

어머니 떠나신 밤에.

*** 어머니 마지막 숨 내쉬기 전에 아버지와 누이들과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기도했다. 구십 삼년 일 개월 어머니와 함께 해 주신 신에게 감사를 그리고 어머니의 영혼에 그 감사가 이어지기를…

그리고 고집 센 내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 내 아버지를 위하여.

천수(天壽)에 그리고 감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