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표 하나

충청북도 보다 조금 작은 면적에 사는 인구수는 백만 명 남짓,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 주 개관이다. 삼십 수년 전에 내가 이곳으로 이주했을 당시 인구수가 육십만 남짓이었으니 변화가 더딘 곳이다.

서울내기인 내가 아주 단조로운 삶에 적당히 녹아 들어도 놀랄 것 없는 세월도 흘렀거니와 이 곳의 한결같은 촌스러움이 이젠 내 몸에 온전히 배어 있어 그야말로 나는 가히 델라웨어 사람이다.

이 작은 주에 하루에 백 명 이상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소식으로 흉흉해 진지 벌써 사흘 째다. 그 수가 어느새 천명에 육박했다. 주지사가 다음 주 안으로 확진자 삼천 명 운운한 말은 사뭇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했나 보다. 이건 인구 대비 대한민국의 열 다섯 배 수치이다.

하루에 몇 차례 알림 속보로 마주하는 바이러스 환경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그러다 보게 된 세계 여러 나라들의 바이러스 확진자 추이 비교 도표다. 그야말로 자랑스런 대한민국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대한민국을 깍아 내리는지? 그것도 자국의 언론과 정치꾼들과 미신적 종교에 빠진 얼치기 종교인들과 아직도 삼국시대를 살고 있는 지역 연고 우선인 사람들과…. 암튼 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21세기 민주주의와 복지 실험을 거쳐가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 앞서 가려고 하는 정부를 가진 대한민국의 오늘이 자랑스럽다.

누구나 다 제 생각이 옳다고 믿고 사는 게 사람사는 모습이겠다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세력들에게 표를 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동체는 이해 불가다.

사월 – 주말편지

너나없이 답답함 안고 사는 이즈음, 손님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띄우다. 어쩜 내게 보낸 것일 수도. 봉화 농사꾼인 벗이 찍은 봄소식을 덤으로 얹었다.


한국인들이 쓰는 아침인사말은 ‘좋은 아침’입니다. 영어의 good morning과 똑같은 말입니다. 한국인들이 이 아침 인사말을 쓴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한국인들이 주로 쓰던 아침인사말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또는 ‘아침 드셨나요?’였습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긴 인사인데 그저 하루 하루 안전하게 살아있는 게 고맙다는 뜻으로 나눈 인사일겝니다. ‘아침 드셨나요’라는 인사는 눈 뜨고 일어나면 그 날의 양식 걱정을 했던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에 나눈 인사였습니다.

이즈음 다시 생각나는 오래 전 제가 쓰던 아침 인사말이랍니다.

거의 매일 한차례 씩은 들려서 인사 드리던 구순 노부모님들께 이즈음은 주에 두차례 그나마 길어야 5분 내외의 짧은 인사만 드리곤 합니다. 노인들에게 가기 전엔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찾아 뵙는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제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 때문이랍니다.

필라에 사는 아들, 며느리와는 이따금 전화 목소리로 안부를 나눈답니다. 그래도 아들 내외는 부부가 함께 있어 걱정이 덜한 편이랍니다.

뉴욕 맨하턴에 있는 딸아이는 전화 할 때 마다 ‘제발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랍니다. 석 주 전에 재택근무를 하는 딸아이에게 제안을 했었답니다. ‘어차피 재택근무를 하니 델라웨어로 내려 오라. 내가 올라가서 너를 데리고 오마.’ 제 제안에 딸아이는 강력히 거부를 했답니다. 계속되는 제 재촉에 딸아이가 한 대답이랍니다. ‘뉴욕에는 이미 바이러스 확진자가 많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미 감염이 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 행여라도 내가 델라웨어로 가서 엄마 아빠에게 옮기게 되면 어떡하냐. 아파트 안에서 꼼짝않고 지낼 것이고, 먹을 것도 많으니 제발 걱정말라.’ 그만 제가 지고 말았답니다.

엊그제 딸아이는 화상 전화를 해서 자신이 스파게티를  얼마나 맛있게 만들어 먹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영상을 보면서 가슴 한 곳이 찡해졌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쟁터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을 격려하자며 아파트와 집에 갇혀 사는 이들이 보내는 박수와 함성 소리를 담은 영상이었답니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 사이에 거리 두기를 하고 살아야 하는 이즈음이지만 이럴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의 이해는 더 넓어지고 서로간 격려의 소리는 더욱 커지는 더하여  평소에 잊고 살았던 가족들과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월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한국에서 농사 짓는 벗이 찍은 봄 소식 함께 나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 어제 CDC(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cloth face mask를 쓸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이미 지난 주 이메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수제 면 마스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무료 제공한다고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원하시는 분들에게 무료 제공해 드립니다. 다만 지난 주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원하셔서 미처 다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내일(월)은 지난 주에 미처 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먼저 제공해 드립니다. 새로 신청하시는 분들에겐 수요일 이후 부터 제공합니다.

https://conta.cc/39I814B

https://www.youtube.com/watch?v=-5XqjyfI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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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8

‘주(州) 내 노인 요양원에 코로나 바이러스확산으로 가족들 임종 지키지 못해’ – 오늘자 동네 신문 온라인판에 오래 동안 걸려 있는 머리기사 제목이다.

오늘까지 주내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절반이 노인 요양원에서 나왔단다. 신문기사는 가족 면회가 차단된 노인 요양원의 현재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임종을 홀로 맞이해야만 하는 노인들의 모습과 빤히 알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가족들의 처지를  꽤나 장문으로 전하고 있다.

노인 요양원에도 여러 등급이 있고, 고급 요양원에서 확진자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은 없단다. 비교적 저소득층이 가는 요양원에서 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단다. 기사는 주내 요양원의 실태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기사를 읽으며 내 머리속은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약 일여 년 넘게 노양원에서 지내시다 지난 정월에 돌아가신 장인 생각과 치매기 날로 깊어지고 쇠해지시는 부모님을 할 수 있는 한 요양원에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내는 내 형제들과 가족들 생각 때문이었다.

복잡한 머리 속이 내 맘대로 풀리지는 않을게다. 그저 하루 하루 시간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미 먼저 가신 장인이나 장모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저 모든 것 감사하므로 기억해야 할 터이다. 오늘 하루 내 삶을 감사할 수 있는 맘 하나, 먼저 가신 이들이 키워 준 것이다.

저녁 나절에 애기처럼 맛나게 드실 어머니 생각하며 우거지 갈비탕 진하게 우려 끓였다. 국을 끓이며 내일을 사는 힘을 얻다.

나는 그저 기억만 할 뿐이지만, 기억함으로 좋은 세상을 바꾸려고 늘 애쓰는 참 좋은 친구들의 삶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정열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고맙다. 그들로 하여 내일을 사는 내 힘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그래, 모든 삶은 죽음에 닿아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기억을 통해 영생하는 삶에 닿아 있다.

필라세사모 -4-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