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10

TV에 빠져 있던 아내가 혼자 중얼거리며 숫자를 읊더니 ‘에고 오래 되었네’하며 한마디 던졌다. ‘벌써 사십 일 년 전 이네…’. ‘뭐가?’하는 내 물음에 대한 응답. ‘우리 만나 거…’

코로나 바이러스로 갑자기 차고 넘친 시간에 조금씩 적응되어 간다. 이젠 공원 출입 인원도 제한한다는 주정부의 발표 이후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뒷뜰에 텃밭이라도 만들어 놀아볼까 하며 세운 하루의 계획은 비바람 치는 날씨 탓에 내일로 미루었다.

지하실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오래된 서류 상자들을 꺼내 정리하다. 정리했다기 보다는 오래  묵혀 둔 쓰레기 파기 작업이었다. 종이 파쇄기가 온 종일 일을 참 많이 했다. 오래된 각종 기록들 일테면  내 잡기장이나 은행 및 세무 서류, 비지니스 관련 온갖 문서들 또는 동네 일하면서 쌓아 둔 각종 문서들을 파쇄하며 새삼 떠오르는 지난 기억들 마저 애써 지우다.

그러다 듣게 된 아내의 시간 ‘사십 일 년’이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하루가 천 년(千年)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이라는 성서구절 하나. 그것이 어찌 새 하늘 새 땅을 주관하는 주(主, 神,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그 무어라 부르든)이거나 새 하늘 새 땅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자들 만이 누릴 몫이랴!

그저 오늘을 ‘하루가 천 년(千年)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삶을 누리는 모든 이들에게 던져진 물음이자 답인 것을.

마치 시간이 정지 되어 있는 듯한 이즈음 이야말로 사람살이가 왈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하는 곳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보니 부활주일이 코 앞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는 곳에서 더욱 가까워진 이웃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날 수 있기를.

사십 일 년이 이미 하루이고, 때론 하루가 사십 일년이 아닌 천년이 되곤 하는 우리 부부 역시. 사랑으로.

(어쩌다 찾아 낸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것에 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