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서삼수

내가 이민 초기에 알게 된 사람들로 이제껏 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큰 형님 뻘이다. 이상하게도 당시 알게 된 내 또래 사람들은 모두 동네를 떠났다. 이젠 나이 탓이기도 하고 내 못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그리 가까이 지내는 한인 또래들은 없다.

서삼수 장로님. 그가 가셨다. 큰 형님 뻘인 그는 종종 내 친구가 되어주곤 했었다.

오늘 아침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장례식에 참여할 수 인원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예식이 끝난 후 그의 운구가 교회 마당을 한 바퀴 돌 때 교인들이 각자의 차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단다. 아내는 마지막 인사는 드려야 한다며 함께 가자고 재촉을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던 날, 곰곰 생각해 보니 내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동네에서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영근씨’라고 불렀었다. 나는 그가 부르던 호칭이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살갑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거니와 세상 바라보는 눈과 생각이 엇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신앙에 대해서도 그리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다. 더더구나 그는 전형적인 대구 사내여서 많은 부분에서 나와는 생각을 달리하는 것들이 많았던 이다.

그러나 기억컨대 그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았다. 사람사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때 그와 나는 죽이 참 잘 맞았다. 생각지도 않을 때 문득 내 가게를 찾아와 한참을 사는 이야기로 꽃 피우기도 했었고, 이따금 안부 전화를 나눌 때면 그저 서로 사는 이야기로 한참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내게 언제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그가 갔다. 일흔 여섯. 너무 이르다.

올초에 죽을 고비를 한번 넘겼던 그를 내가 모처럼 참석했던 주일 예배에서 만났었다. ‘영근씨, 교회 좀 나와라. 가끔은 사는 이야기도 하며 살아야지!’ 그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사람 서삼수, 그를 잃다. 참으로 미안하다.

*** 이 땅에서 그가 사람으로서 끝내 풀지 못했던 한들이 이제 한순간에 풀리는 신의 은총이 그와 함께 하심과, 오늘을 아파할 그의 아내 서후임 권사님 그리고 가족들에게  신의 크고 놀라운 위로와 위안이 함께 하심을 믿고 고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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