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

너나없이 걱정과 염려가 많은 이즈음, 내 스스로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에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벌써 41년이네!’ 며칠 전 아내가 툭 던졌던 말입니다. ‘뭐가?’라는 제 물음에 아내가 한 대답은 ‘우리가 만난 거.’였습니다.(이튿날 아내는 42년 이라고 정정을 했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 세월 중 세탁소를 이어 온 30여년 동안은 거의 24시간을 함께 했으니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온 셈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얼마나 많이 싸우며 살아 왔을까요?

최근 가정에 머무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부부싸움이 늘고 아동학대도 심해졌다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생각난 저희 부부의 지난 시간들이랍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세탁소를 한 10여년 했을 무렵이랍니다. ‘세탁소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세탁소 하려고 이민을 왔었나?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에 빠져 세탁소를 아내에게 맡기고 제가 새로 시작한 일은 신문사였습니다. 워싱톤에서 뉴욕까지 미국 동북부 지역에 사는 한국계 시민들을 위한 한국어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물론 아내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일천한 경험과 이재에 밝지 못했던 저의 부족함으로 신문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한 이년 후 다시 세탁소롤 돌아온 제게 남은 것은 빚 뿐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고 오직 세탁소 일에만 매달려 빚을 갚았답니다. 그 때 이후 세탁소는 내 천직이 되었고, 그 무렵부터 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님들에게  보내는 주말편지랍니다.

다시 세탁소로 돌아왔던 그 해 겨울 매우 추었던 어느 저녁이었답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아내와 제 차를 모두 판 뒤 600불을 주고 산 아주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다녔답니다. 자동차 창문이 열리지 않는 차였답니다. 그 추운 저녁 세탁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시동을 걸었답니다. 그 때 아내가 웃으며 제게 했던 말이랍니다. ‘야! 이 차가 벤츠보다 좋네! 이렇게 추어도 단 한번에 시동이 걸리네!’

그 날 이후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며 살지만, 그 추운 겨울 저녁에 아내가 제게 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사랑을 넘어서는 싸움은 해 본 적이 없답니다.

너나없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들을 안고 사는 이즈음입니다.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랍니다. 당장 내야 할 렌트비를 비롯한 금전적인 걱정 뿐만 아니라 노부모와 아이들에 대한 염려 등등  그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답니다.

하여 오래 전 읽었던 아주 짧은 이야기 하나 나눕니다.

<어느 마을에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마을사제에게 돌림병으로 200명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을사제는 죽음의 사자와 담판을 지어 사망자의 수를 100명으로 줄였습니다. 그런데 돌림병이 지나가고 난 후에 살펴보니 마을 주민이 700명이 죽었습니다. 마을 사제는 죽음의 사자에게 왜 약속을 어겼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100명밖에 죽이지 않았어, 나머지 600명은 염려로 죽은 거야”>

제 이야기를 늘어 놓다보니 오늘 편지는 조금 길어졌습니다.

서로 간에 거리 두기를 해야만 하는 이런 상황도 결국은 끝날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 가족들 그리고 안녕을 묻는 이웃들 사이에 걱정, 염려, 두려움 대신에 사랑과 이해, 용기와 희망이 넘쳐나는 이 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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