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에

내 삶의 현장인 일터나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전혀 낌새를 느낄 수 없다만, 뉴스와 소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흉흉하다.

이웃 주들인 뉴저지, 메릴랜드주나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펜실베니아, 뉴욕 등지에도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늘어간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네 뉴스들이 호들갑스럽지 않다. 여기도 어김없이 손 안에서 깊은 생각없이  쉽게 오가는 스마트 폰을 통한 가짜 뉴스들은 넘쳐나지만, 아직은 비교적 덤덤하다.

저녁나절,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들을 나누며 조촐히 한 잔 했다.

이젠 거나할 정도로 마시지도 못하지만, 몇 잔 술 보다는 진국같은 벗들과 모처럼  나눈 이야기에 취한 저녁이다.

아직 생각이 통하는 친구들과 한 잔 나눌 수 있는 내 삶엔 복(福)이 넘치는게다.

집에 돌아와 낮부터 시작한 사골 곰탕을 마무리 짓다. 치매기 깊어 지시는 내 부모님을 위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 곧  21세기 들어서 변한 사람살이 이야기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유발 하라리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그래도 사람 살이엔 여전히 이런저런 두려움들이 가실 날 없고, 그 두려움 사이로 오직 제 배 불리려는 각종 가짜들이 기승을 부리는 법. 종교, 이념. 신념이라는 가짜의 옷들을 입고.

더불어 함께 해야 하는 가족들과 , 만나서 좋은 벗들과,  누구나가 마주칠 수 있는 재해에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내가 숨쉬는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한 축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