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

솔직히 내 나이를 인정하고 살지는 않는 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습긴하다만, 내 가게 손님들이 종종 가늠해 주는 나이 쯤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칠십이 손에 잡히는 처지지만 황송하게도 손님들은 오십 줄 운운하곤 한다.  착각하는 내가 나쁘지 그들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러다 내가 이미 늙고 지극히 보수적인 노인이 되었구나하는 현실을 직시케 해 주는 책 한권을 마주해 읽었다.

시인 허영선이 쓴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이다.

역사학자 서중석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4.3은 시인이 써야겠구나’ ‘시인이나 소설가, 화백이 가슴에 파고드는 진실을 정말 잘 그려냈구나’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2만 5000에서 3만을 헤는 4.3희생자의 처절한 모습. 오로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게 된다)며’ 살아 온, 죽음의 문턱에 있었거나 죽음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심정과 삶은 시인의 마음을 통해야 온전히 그려질 것 같다.>라고 썻다만 내겐 시인이 쓴 역사의 현실이 읽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바로 나이 들어 늙은 탓이다. 나도 젊어 한 땐 탐닉했던 문체였건만 정말 불편했다.

책장을 처음 열자 마주친 저자인 시인의 자서이다.

<기억하라. 반드시 기억하라는 이 기억의 통꽃.
더 이상 피어날 수 없었던 어린 눈동자를 대신해
살아있는 눈동자들이 봅니다.

수많은 꽃목숨들이 참혹하게 떠났습니다.
잊어라. 지워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라는 제주도 방언)>

그렇게 시작하는 책, 몇 장을 넘기다 그냥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책장을 이어 넘기기엔 아팠고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다 내 나이 탓이었다.

그러다 어제 오늘 내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일독하였다.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해 보자는 후배들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끝부분에 인용된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4.3 위령제에서 했다는 추도사의 일부이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 뛰게 하는 시인의 문체가 아니라도 조곤조곤 나누는 지난 이야기들을 통해 변해가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늙긴 확실히 늙은게다.

그래 이젠 나도 보수다.

하여, 바라기는 이제껏 보수연하던 세력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픈 세월 꾸역꾸역 읽어내는 보수들이 노인 되는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