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에

타고난 내 성격 탓일게다. 매사 극단적 사고나 선택은 피하는 편이거니와, 때론 그런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 강하게 거부나 반대의 목청을 높이곤 하는 성정은 나이 들어도 바뀌질 않는다. 믿음도 예외는 아니다.

모처럼 참석한 예배 설교 시간, 그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믿음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미화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웃했던 것이다.

어쩌면 계절 탓인지도 모르겠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이즈음,  믿음 안에서 맞는 죽음까지 아름다워야 할 까닭들도 있을게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있는 자들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오후에 아내와 함께 성탄 장식으로 화사하게 꾸며진 Longwood Garden 정원을 걸었다. 아내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DSC09058DSC09072 DSC09085 DSC09095 DSC09111 DSC09119DSC09167 DSC09168 DSC09169 DSC09175 DSC09177 DSC09200 DSC09204 DSC09211

인형같은 어린아이들이 장식에 홀려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내 아이들이 저렇게 인형 같았을 어린 시절에 왜 이런 장식을 함께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최근에 읽은 책 속 한 대목.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세상과 작별하고자 한다고 말하면서, 병에서 치료되어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모순인가! 그러나 비록 신자(信者)라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

정원을 나서며 사무실에 들려 wheelchair 사용에 대해 묻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이 정원을 함께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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