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부수는 건 순식간이네!’ 손님 한 분이 가게에 들어서며 내게 던진 말이다. 이즈음 내 가게가 있는 상가의 반을 부수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원래 내 가게는 지금 부수고 있는 상가 쪽에 있었다. 그 쪽에서 30년을 있다가 올 봄에 맞은 편에 상가가 살아남는 쪽으로 이전하였다. 내가 30년 정(情)을 붙였던 곳도 다음 주면 더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상가 건물주는 상가의 반을 헐고 그 곳에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공사에 돌입한 것이다. 건물주의 청사진에 따르면 아파트가 완공되면 내 가게는 그야말로 동네 최고의 명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그의 말에 귀 기울였을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지 않았으므로 그저 그의 청사진이었을 뿐이었다.
당장의 내 고민은 공사로 인한 내 손님들이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최대치와 건물주의 청사진을 이루는 시간 사이에서 내가 참아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가늠하는 일이다. 그 간극은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이상일수도 있다. 그래 떨칠 수 없는 불안이 있기는 하지만, 믿는 것은 내 경험과 나이다. ‘내가 여기까지 온 세월이 얼마인데….’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상가 건물이 부숴지는 모습을 담은 모습을 보다 문득 떠 올린 글 하나. 단재 신채호선생이 쓰신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이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 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 중략-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내 나이 스물 적에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했던 단재 선생의 외침이었다.
세월 흘러 역사 속 모든 혁명이란 순간적 변혁일 뿐 늘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이 굳어지고 혁명보다는 개혁을, 아니 어려운 개혁보다는 서서히 감히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가 좋은 것이라는 노회함이 어느새 익어버린 나이에 단재 선생의 선언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이즈음 내가 한국 뉴스에 너무 몰입해 있기 때문일게다.
어쩌겠나? 이 땅에서 산 날이 한국에서 산 날보다 많을지라도 여전히 한국어로 사고하는 한 한국인인 것을.
이즈음 한국뉴스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할수록 한국과 한국인들이 자랑스럽다.
역사 이래 어느 공동체도 감히 이루지 못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아주 서서히 혁명적 변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재 선생께서 꿈꾸었던 혁명을 이루되 결코 혁명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변화를 이루어내는 모습이 그려 지기 때문이다.
하여 여의도에 모이는 시민들에게, 나와 같은 세대로 흔치 않게 참 떳떳한 삶을 이어온 듯한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에게,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변화가 끝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응원을 보내며…
오늘 내 가게 손님 한 분께 받은 작은 화분과 분에 넘치는 찬사보다 수 천 수 만 배 큰 박수가 여의도에 모이는 시민들과 문대통령과 그들과 꿈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들리는 그 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