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八字)에

모처럼 아들 며느리가 내 집을 찾은 토요일 오후, 나는 길이나 함께 걷자고 했다.

아이들이 찾아올 줄도 몰랐거니와, 내 집에 오기 전에 친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뵙고, 양로 시설에 계신 외할아버지도 뵙고 왔다고 하여 내 얼굴에 크게 웃음이 피었다. 하여 함께 걷자고 했던 것이다.

낮이 많이 짧아졌다. 반나절 가게 일보고 나선 길이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짧을 듯 하여 조바심이 일었다.

동네 공원엔 시월 하순의 가을이 가득 찼다.

공원길을 걸으며 수시로 쎌폰을 확인해 본다. 딸아이가 열흘 여행에서 돌아 왔다는 소식이 도착할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내는 양로 시설에서 처음 생일을 맞는 장인을 위한 자리에 대해 말했다. 덧붙일 것 없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함께 하고 올라가라는 내 말에 아들 며느리는 선약이 있다며 떠나고, 어머니 아버지는 손주 녀석이 찾아왔었다는 일에 감격하여 전화를 끝내시지 못하고, 스무 시간 비행 끝에 제 아파트에 돌아왔다는 딸아이 소식에 내 가슴은 은단 입에 문듯 화하게 뻥 뚫리고…

그저 감사가 이어지는 시월인데…

나는 왜 지금 이 나이에도 한국 뉴스에 속을 끓이는지?

참 팔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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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부수는 건 순식간이네!’ 손님 한 분이 가게에 들어서며 내게 던진 말이다. 이즈음 내 가게가 있는 상가의 반을 부수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원래 내 가게는 지금 부수고 있는 상가 쪽에 있었다. 그 쪽에서 30년을 있다가 올 봄에 맞은 편에 상가가 살아남는 쪽으로 이전하였다. 내가 30년 정(情)을 붙였던 곳도 다음 주면 더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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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건물주는 상가의 반을 헐고 그 곳에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공사에 돌입한 것이다. 건물주의 청사진에 따르면 아파트가 완공되면 내 가게는 그야말로 동네 최고의 명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그의 말에 귀 기울였을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지 않았으므로 그저 그의 청사진이었을 뿐이었다.

당장의 내 고민은 공사로 인한 내 손님들이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최대치와 건물주의 청사진을 이루는 시간 사이에서 내가 참아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가늠하는 일이다. 그 간극은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이상일수도 있다. 그래 떨칠 수 없는 불안이 있기는 하지만, 믿는 것은 내 경험과 나이다. ‘내가 여기까지 온 세월이 얼마인데….’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상가 건물이 부숴지는 모습을 담은 모습을 보다 문득 떠 올린 글 하나. 단재 신채호선생이 쓰신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이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 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 중략-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내 나이 스물 적에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했던 단재 선생의 외침이었다.

세월 흘러 역사 속 모든 혁명이란 순간적 변혁일 뿐 늘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이 굳어지고 혁명보다는 개혁을, 아니 어려운 개혁보다는 서서히 감히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가 좋은 것이라는 노회함이 어느새 익어버린 나이에 단재 선생의 선언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이즈음 내가 한국 뉴스에 너무 몰입해 있기 때문일게다.

어쩌겠나? 이 땅에서 산 날이 한국에서 산 날보다 많을지라도 여전히 한국어로 사고하는 한 한국인인 것을.

이즈음 한국뉴스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할수록 한국과 한국인들이 자랑스럽다.

역사 이래 어느 공동체도 감히 이루지 못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아주 서서히 혁명적 변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재 선생께서 꿈꾸었던 혁명을 이루되 결코 혁명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변화를 이루어내는 모습이 그려 지기 때문이다.

하여 여의도에 모이는 시민들에게, 나와 같은 세대로 흔치 않게 참 떳떳한 삶을 이어온 듯한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에게,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변화가 끝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응원을 보내며…

오늘 내 가게 손님 한 분께 받은 작은 화분과 분에 넘치는 찬사보다 수 천 수 만 배 큰  박수가 여의도에 모이는 시민들과 문대통령과 그들과 꿈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들리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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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으로 온라인 신문들을 훑다가 눈에 뜨인 말.

“우연은 때로 인생의 설계를 뒤흔들어 놓지만 결국 그것을 다시 정돈하고 바로잡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계획한 것이든, 우연이 만든 것이든, 고정된 운명이란 없는 셈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이라는 이가 한 말이란다. 난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평론가라는 직업에 그리 우호적이지 못한 나는 시사평론가란 이들의 말엔 더더욱 귀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그의 근황을 전하는 신문기사이다.

<그는 올해 초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지난 2월 서울대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현재까지 병원에서 재활 중이다. 합병증으로 찾아온 폐렴과 어지럼증으로 인한 고비를 넘겼지만, 후유증으로 마비된 혀는 회복이 더뎠다. 모든 방송을 그만둬야 했다. 아내와의 여행은 여전히 계획에 머물러 있다.>

그가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찾게 된 것은 바로 투병을 통해서이다.

개인으로서 또는  집단이나 나아가 국가의 일원인 시민으로서, 진정 의지를 갖고 온 몸을 던져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설 상황이나 경우란  바로 자신이나 속한 집단 또는 국가가 심히 앓을 때이다.

개인의 삶이나 역사에 있어 혁명적 변곡은 대개의 경우 우연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그가 세웠다는 아내와 함께 하는 꿈이 이루어지길 빌며…

책씻이

온종일 가을비 추적이다.

게으르기 딱 좋은 일요일, 책 한권 읽다. 조일준이 쓴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이다.

제 1부 <인류의 이주, 그 변천과 흥망의 기록>은 딱히 이민사라기보다는 인류 통사에 가까워 흥미진진하게 한눈에 읽었다.

제 2부 <국제 이주, 여전한 문제들>은 오늘을 사는 인류 앞에 놓인 이민과 난민 문제를 다루는데 그 시각이 참 따듯하다. 하여 저자이자 기자인 조일준이 쓴 기사들을 찾아 읽다.

공동체가 <집단기억>들을 어떻게 생성하고 공유해야 할까? 라는 물음을 갖다.

책을 덮으며 깊게 남은 한 줄은 저자가 인용한 아론 브레그먼의 <6일 전쟁 50년의 점령>에 나오는 말.

<역사 서술의 초점이 단 한번만이라도 개체의 운명에 맞춰질 수 있다면 민족의 대이동은 개인들의 피눈물로 얼룩지고 고통과 한이 어린 대하 드라마였을 것.>

책씻이로 홀로 한 잔 하다.

아침 신문기사를 훑다 깨달은 부모님 결혼 73주년이 생각나 노인들께 전화, 재롱을 부리다. 내친김에  노인들 수발에 늙지 못하는 누이에게도 전화 한 통으로 미안함을 씻다.

모처럼 서울 큰 처남에게도 전화 한 통 넣어 흰소리 낄낄거리며 함께 웃다.

이 가을비 그치면 서리가 내릴 터.

아무렴 이주하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따스함일 터이니.

가을 밤

가을이 깊어 가는 화창한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숲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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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나무들이 내쉬는 숨이 이 숲을 채우고 있다는 말이렸다!’ 아내는 어디서나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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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산책으로 한 주간 노동의 피로를 씻다. 날다 지친 잠자리 한 마리 내 등에 업혀 함께 걷다.

저녁 나절, 육영수가 지은 <혁명의 배반, 저항의 역사>를 훑어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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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 대한 주류해석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재성찰하고….’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말이다.

그리고 그가 에필로그에 남긴 소명과 소망.

‘일상생활정치에서 자발적으로 왕따 당하려는 용기와 독립심은 나의 특권이며 역사적 소명이다.’

‘공장 바깥에 있는 노동자, 학교 바깥에 있는 학생, 감옥 바깥에서 생산되는 품행방정 남녀들, 국가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이들 모두에게 혁명은 실패나 성공으로 마감되는 권력다툼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열정 그 자체이다.’

‘너와 나의 또 다른 시작은 일상적으로 가볍지만 정치적으로 진지한 저항의 박자에 실려 비누거품처럼 온 세상에 번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권력의 여의주를 움켜진 악마가 늙을수록 뻔뻔하고 노회해지는 것에 반비례해, 우리의 연대와 투쟁은 뱀처럼 매끄럽고 모꼬지처럼 흥겹고 늠름할 것이다.’

한국 여의도 광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실패와 성공을 넘어 열정 그 자체로 전혀 새로운 혁명의 역사를 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을 생각하며…

가을 밤에.

평등에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을 보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게 되었다. 영화 한편 보자고 몇 시간을 달려 도시를 찾아갈 만큼 광(狂)이 아니므로 그저 집에서 보았다. 이럴 때 도움을 주는 친구는 큰처남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하면 그는 늘 그 길을 열어준다. 이 또한 내 복이다.

영화를 본 후 떠올린 소설들이 있다. 1950대 소설인 손창섭의 ‘잉여인간(剩餘人間)’과 1970년대 소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두 소설과 영화의 같고 다른 점들을 생각하며 흘러 간 반세기 시간을 덧붙여 보았다.

그 세월 동안 빠르게 변한 것들도 무수히 많지만, 어쩜 그리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까?라는  탄식이 일 정도로 변하지 않았거나 더디게 변한 것들을 생각케 한 영화였다.

‘냄새’ 와 ‘계단’으로 상징되는 불평등한 사회 – 그 불평등의 간격이나 폭의 크기는 접어 두더라도- 내가 코흘리던 옛 시절이나 노년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이나 변함 없다.

영화 기생충 속 ‘박사장’의 모습은 이즈음 내가 접하는 뉴스 속 권력자 또는 가진 자들의 모습에 비하면 차라리 1950년대 인물처럼 낭만적이다. 이제 겨우 영화 개봉일에서 몇 달 지났을 뿐인데….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또 한가지. ‘냄새’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은 세상, ‘계단’이 없는 평평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언제 어느 곳에나 살고 있다는…

지하실의 사내들이 사람대접 받으며 빛을 함께 쐬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딱히 밝은 햇빛만이 아닐지라도.

***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가게 문을 열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가로등불과 달빛 아래 가게 문을 열다.

단풍놀이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는 선생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게다가 알고  난 후, 맛 본 기쁨이 가늠 못 할 정도로 클 때 이어지는 감사는 또 얼마나 큰지!

몇 주 전 ‘이 맘 때 가을을 즐길 만한 가까운 곳 추천 좀 해 주세요.’라는 내 부탁에 이길영 선생님은 흔쾌히 주저없이 몇 군데를 소개해 주셨다. 그 중엔  세 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지만 으뜸으로 치신 뉴욕주에 있는 Minnewaska State Park가 있었다.

이선생께서는 세 시간이라고 하셨지만 내가 사는 곳과 내 운전 실력으로 따져보니 네 시간에서 네 시간 반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구글링을 통해 살펴보니 여간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딸아이와 함께 가을 길을 걸어 볼 생각을 하니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맨하턴 도시 생활을 하는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는 뜻이었는데,  문제는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

아내는 즉답을 했고 이틀을 기다려 얻은 딸아이의 응답 역시 ‘허락하마!’였다.

어제 어머니는 ‘그래, 먼 길 다녀 온다고…’하시며 노자돈 백불을 내미셨다.

그렇게 다녀 온 일박 이일 가을 단풍놀이.

두어 시간 눈이 닿는 곳마다 가득 찬 가을 길을 달려 이르른 공원에서 세 시간여 아내와 딸과 함께 걷던 가을 길은 그저 아름답고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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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 또래에 겪을 수 있는 아픔을 잘 이겨낸 딸아이와 이제 사십 년을 바라보는 함께 한 세월 그 숱한 지긋지긋한 이야기들을 낙엽에 묻고 언제나 밝은 아내와 함께 걸은 가을 길, 그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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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왔다는 내 전화 인사에 어머니는 ‘일찍 집에 들어 와서 좋구나!’ 하셨다.

그래 이길영 선생님께 특별히 드리는 감사이다.

나를 지탱해주는 세 여자,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을 뒤쫓아 걷는 가을길에서 느낀 그 아름답고 황홀한 시간들에 대하여.

번잡한 아울렛 상가에서 아내와 딸을 뒤쫓으며 맛 본 흡족함은 덤으로 얻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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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살며 새로운 것들을 보여 주거나 알려 주고 가르쳐 주는 이들이 곁에 있음은 큰 축복이다. 늦은 밤 책장을 넘기다 든 생각이다.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쩌면 지극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말)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어쩜 이 생각 역시 나 혼자 만의 것일 수도 있겠다만…)

그렇게 함께 읽기로 한 첫 번 째 책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솔직히 내 관심을 크게 끄는 주제는 아니었다.

허나 시간에 따라 늙어가는 몸은 어쩔 수 없더라도, 몰랐던 것들을 새로 만나고 아는 기쁨으로 인해 생각하는 맘은 때로 젊어 질 수도 있는 법. 그 생각으로 넘기던 책장이었다.

<사회정의를 위한 혁명적 운동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문제를 규정하는 데 더 능하다.>

책장을 넘기다 번뜩 이즈음 세상 일들을 다시 생각케 한 배움이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 책의 저자 Bell Hooks의 선언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는 어쩜 이미 페미니스트 대열속에 서 있는 것은 아닐지?

<평등과 존중이라는 원칙 , 그리고 동반적 관계를 실현하고 오래 지속하려면 상호 만족과 성장이 필수라는 믿음의 원칙 위에 세운 동료애적 관계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쓸 것이다.>

필라세사모 벗들에게 감사를.

눈물에

어머니는 늘 부지런하셨다.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전, 이 맘 때면 방문 창호지와 문풍지를 가셨다. 어머니가 연탄광을 정리하고  김장 독을 점검하는 일이 끝날 때이면 김장철이 다가오곤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네 남매 계절 옷정리도 오로지 어머니 몫이었다

딱히 내 어머니를 흉내 내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처럼 부지런 하지도 않거니와 아버지처럼 꼼꼼하지도 못한 내가 어제 오늘 가게와 집, 계절 정리와 맞이로 시간을 보냈다. 애초 아내와 나는 어제 근사한 저녁을 보낼 요량이었다. 시간 계산이 오락가락하시지만 여전히 부지런하신 어머니 가 어제 급작스럽게 우리 부부의 계획을 바꾸어 주셨다.

그렇게 주말 이틀을 보내고, 일요일 늦은 밤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그저 감사다. 그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모니터에는 한국 서초동에서 있었던 촛불집회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들은 반반의 갈등을 부추기고, 원래 그런 이들은 그렇다 치다라도 이른바 진보연하던 이들 중 몇몇은 언제나 그렇듯 제 얼굴 드러내는 일에 충실하고….

그러나 역사란 늘 즉흥과 저항을 무기로 한, 그저 하루 걱정에 매인 사람들의 외침에 따라 흘러 왔다는 생각은 내 눈물 끝에 얻은 생각이다.

그래 또 감사다.

아침나절 내 가게 손님들에게 이 계절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냈더니 손님 하나가 제법 긴 답신을 보내와  또 눈물이다.

그의 말이다.

“너의 계절에 대한 감사에 꼭 덧붙일 또 다른 감사가 있다. 최근 몇달 동안 우리들이 살고 있는 Newark 날씨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더웠다한들 남쪽 볼티모어나 워싱톤 만큼 덥지 않았고, 여타의 지역처럼 허리케인 토네이도 홍수나 폭우, 거센 바람들도 겪지 않았다. 이건 사계절을 누리는 감사에 마땅히 덧붙일 일이다.”

그래 무릇 감사란 바꾸어진 환경에서 드릴 수 있어야 참 감사다. 내가 사는 NewarK이 볼티모아나 워싱톤 보다 더워도, 홍수 폭우 토네이도 거센 바람을 겪어도… 사계절을 누릴 수 없어도…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부질없던 때는 없다. 그렇게 모든 감사가 부질없던 때는 없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은 늘 자신을 뺀 가족 사랑이었으므로.

가족에서 이웃으로 뻗어 나가는  촛불에 흐르는 눈물은 그저 마땅할 뿐.

어제 함께 못한, 지금 가까운 이웃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그치고 웃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