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기엔 숲길이 딱 제 격이다. 동네 Middle Run Valley 숲길을 걷다. 나무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타고 가을이 숲속에 내려 앉았다. 아직 미련이 많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여름도 그 숲속에 함께 했다. 두어 시간 숲길을 걷는 사이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일주일 쌓인 노동의 피로와 이런저런 삶의 염려들을 땀과 함께 숲속에 내려 놓다. 오늘따라 인적이 매우 드물어 숲속을 홀로 향유한 즐거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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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아내와 함께 필라 나들이를 다녀오다. 모국의 조국 정국에 맞추어 뜻 맞는 이들이 만든 행사에 머릿수 하나라도 채울 겸 해서 나선 길이다.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건만 준비들을 참 많이 했다. 생각이 엇비슷한 이들의 얼굴을 보는 일만으로도 살아있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으로 또 한 주간의 삶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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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미풍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아침 느긋하게 즐기는 커피향이 참 좋다.

어제 오후 모처럼 아들 내외와 함께 샤핑도 하고 저녁식사도 함께 즐겼다. 한가로운 시골길을 한 시간여 달려 닿은 Lancaster, 비록 자주는 아니어도 많이 왔던 곳인데 어제는 아주 새로웠다. 내 뜻이 아니라 아들녀석이 앞장 서 가는 길을 쫓아 다녀서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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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에 있는 작은 한식당에서 1970년대 남도 작은 소읍에서 들어섰던 다방을 떠올렸다. 음식 맛이 기대 이상이었다. 한식을 무엇이나 잘 먹는 며늘아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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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생각에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훑어보는 뉴스들,  200만과 5만 숫자 논쟁이라는 허접 쓰레기 기사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제 오후, 아내와 아이들이 옷가게 순례를 하는 동안 나는 상가 벤치에 앉아 구름이 노는 모양에 빠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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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돌아오는 길, 하늘에선 마른 번개와 천둥이 이어졋었다.

때론 게으른 일요일 아침이 정말 좋다.

흥춤에

엊그제 저녁 밥상을 나누다 아내가 내게 건넨 부탁이었다. ‘춤추기 전에 보는 사람들에게 춤에 대한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여기 저기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봐도 ‘흥춤’에 대한 딱히 좋은 설명을 찾지 못했으니, 간략하게 한 두어 줄 정도로 안내 글을 써보라는 부탁 아닌 명령이었다.

그렇게 떠오른 내 할아버지 생각이다. 막걸리 몇 순배에 불콰해진 얼굴로 일어나 두 팔 벌려 으쓱으쓱 느린 몸동작으로 그 날의 즐거움을 맘껏 토해 내셨던 내 할아버지, 그래 흥이었다. 술 좋아하시던 내 할아버지의 흥은 술 한 방울 입에 대시지 않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으로 이어졌고….

그 생각으로 두어 줄 써 본 ‘흥춤’에 대한 내 생각.

<흥춤이란 신이 나서 추는 춤이라는 뜻입니다.

흥춤을 추던 옛 한국인들은 그다지 흥겹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랍니다. 가난에 허덕였고, 꿈꾸었던 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하루 하루를 이어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흥춤을 추며 어렵고 힘든 현실을 꿋꿋히 이겨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어져 내려 온 춤이 바로 흥춤이랍니다.

“Heung-choom (Joy dance) means “a dance in the excess of mirth or joy.”

Korean people in the old days who danced this dance were those who didn’t live very joyful lives. They struggled in poverty and lived in difficult lives in which their dreams never happened. But they withstood hardship and pain in their everyday lives with dancing “Heung-choom.” The tradition of the dance has been handed down like that.>

딱히 한국인이라고 한정 지을 일도 아니다. 그저 삶이란 한과 흥이 어우러져 이어 가는 게 아닐까?

지난 일요일에 걸었던 노란 가을 길에 대한 흥을 못잊어 오늘 아내와 함께 다시 걸었다. 겨우 한 주간 사이 노란색들은 누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DSC07262 DSC07661 DSC07664 DSC07666 DSC07671 DSC07672 DSC07683 DSC07686 DSC07687 DSC07690 DSC07699 DSC07707

흥으로 살던 내 할아버지에게도 쌓였던 한들이 많았을 터이고, 한 많던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흥노래 부르던 시절도 많았나니.

그렇게 또 가을이다.

사진

한인행사에서 모처럼 만난 B가 물었다. ‘사진은 언제 부터…’  내가 사진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아무렴 나도 낯선 것을.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 사진을 찍는 일은 아직 낯설다. 그러니 오죽 어설프랴.

하늘, 구름, 새, 나비, 꽃, 길…. 나는 전엔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들을 사진기를 통해 만난다. 그 맛을 알고 나니 사진기 없이도 내가 숨쉬는 세상이 새로울 때가 참 많다. 그래서 감사다.

오늘 아내가 춤추는 사진을 찍으며 든 생각 하나.

매일 보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아름다움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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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길

하늘 맑은 날에 노란 가을 길을 걷다.

정신 말짱하신 어머니가 ‘너 자꾸 어딜 가니?’라고 묻고,
방긋 웃는 장인이 ‘김서방, 미안해…’ 하시는 날에.

후유…

아내가 선물한  모자를 벗고 땀을 닦다.

참 아름다운 구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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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에 자문자답自問自答

어제 밤 미국의 검사 제도에 대해 배웠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크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땅에 살며 검사를 만나 본 적도 없고, 내 삶과는 특별한 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솔직히 이제껏 이 땅의 검사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몇 차례 법정에 서 본 경험은 있다. 삼십 년 넘는 이민 생활에서 손 꼽아보니 거의 열 번 가까이 법정에 가 본 듯하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대부분이 이민 초기에 있었던 일들이다 . 막 장사를 시작하고 손님들과의 분쟁으로, 또는 사업체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생긴 일들로 인해 서 보았던 법정 경험들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두 차례 변호사를 선임했었다. 나머지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 부부가 함께 법정에 섰었다. 겁날 게 없던 젊은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변호사, 의사를 만나지 않고 사는 삶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손님들과의 분쟁을 일으키지 않을 만큼 노회하기도 하거니와 사업체를 사고 파는 일을 만들 여력이 없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 땅의 검사제도에 대한 배움이였다. 배심원으로 불려 나갔거나 선거에서 Attorney General를 뽑거나 하면서도 솔직히 미국 또는 내가 살고 있는 주 정부의 사법체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게 뒤늦게 미국 사회를 새롭게 알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

어제  가르쳐 준 변호사 선생님과 함께 배운 십 여명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나누는 이들이다. 그 이름은 ‘필라 세사모’다. 필라델피아 인근에 살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살자는 뜻으로 함께 하는 이들이다.

몇 주 전에 이 모임에서 나눈 대화 가운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왜 우린 아직도 세월호인가?” 질문만 던져 놓은 채 우린 아직 그에 대한 공동의 답을 마련하진 못하고 있다.

오늘 낮에 일을 하면서 문득 내게 떠오른 질문이었다. “왜 난 아직도 세월호인가?” 아마 어제 밤 공부 탓이었을 게다.

어제 밤 선생님은 미국의 형사 사법 제도에 있어 피고인과 검사가 다투었을 때, 만일 일심에서 검사가 패소하면 검사는 항소권이 없다고 했다. 다만 피고인이 패소했을 때는 항소권이 부여된단다.  국가와 시민과의 다툼을 다루는 룰이란다.

국가와 시민과의 다툼을 다루는 법칙을 새롭게 만들어 보자는 지속적인 싸움이야말로 바로 세월호 참사 가족들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르러 그 숙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다섯 번 째 한(恨)으로 맞는 한가위 명절을 보내는 가족들에게 아무 것도 못하지만 그저 함께 기억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만으로…

““왜 난 아직도 세월호인가?”에 대한 소심한 내 응답.

 

정의에

일요일 하루 집에서 푹 쉬는 축복을 누렸다. 연휴로 내일도 쉴 수 있다는 여유에서 온 생각이리라. 창문들을 여니 상큼한 바람이 집안에 가득하다. 새들도 오늘은 노는 날인가 보다. 마냥 즐거운 새소리도 바람과 함께 집안을 들락인다.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어 보다 집어 든 책,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샌델이 이 책에서 말했던 미국 교육 제도 특히 미국 대학의 입학제도에 나타난 정의 문제를 찾아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샌델은 이 책 제 7장에서 미국 대학들이 취하고 있는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논쟁을 다룬다.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인 미국 사회의 한 과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미 다 커 버려 내 문제가 아닌 듯 하지만, 여전히 내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내 후대들이 겪어 내야 할 이 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까닭은 한국 뉴스 탓이었다. 이른바 ‘조국현상’ 때문이랄까.

나는 이명박시대에 교육부 수장이었던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가 펼쳤던 교육 정책 기반의 지식을 쌓은 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미국 교육에 대한 신봉자였다.

조국 교수의 딸이 전형을 치루었던 당시의 대학 입시 제도는 그렇게 철저히 미국 대학 입시 제도를 본뜨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조국 현상이 일기 전 까지 그 제도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심지어 ‘기여 입학제’ 도입 운운하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터진 문제인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국 교수 딸의 입장에 서서 보자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샌델은 제 7장에서 미국 입시 제도를 다루기 전에 그 앞 장인 제6장에서 미국 정치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한 평등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상술하고 있다.

그는 제 6장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존 롤스의 말을 인용한다.

<자연의 배분 방식은 정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다.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위치를 갖고 태어나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자연적인 사실일 뿐이다. 정의냐 부정의냐는 제도가 그러한 사실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샌델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롤스는 우리가 그런 사실들을 다룰 떄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 , 사회적 여건을 (공동체를 위해)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 철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한 세기 넘는 세월 동안 그 땅을 지배해 온 친일, 친미 등의 주장으로 제 배 불려 온 세력과 싸우며 평등한 사회를 위해 고뇌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맥주 몇 캔에 거나해 책을 덮다.

저녁 나절 호박 썰어 새우젓 넣어 볶고, 가지를 무치다.

하루 잘 쉬었다.

십구 년 구월 초하루에

 

구월 아침

연휴를 맞아 느긋하게 늦잠을 즐겨야지 했다만, 습관 탓인지 여느 때처럼 잠을 깨 일어나다. 하릴없이 집안을 서성이다가 동네 한바퀴를 걷다. 동네 어귀에는 어느새 가을이 다가 섰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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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새 장소로 옮긴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정말 시간 한번 빠르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유난히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가게를 옮기고 자리를 잡아가는 지난 반년 사이, 이런 저런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새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가 아주 크다. 무엇보다 내 가게 손님들에게 드리는 감사이다.

이른 아침 산책 길에서 만나는 꽃들에 대한 고마움도 크다. 꽃들은 오늘 하루 누리는 삶에 대한 감사를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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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하늘거리는 강아지풀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추억들을 지난 날에 대한 감사로 이어보는 느긋한 연휴 아침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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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앞에 서 있는 밤나무엔 밤들이 무성하게 여물어 가고 있다. 모든 열매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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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미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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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9월을 연다. 멈춤 신호와 전기줄과 나무들이 어지러워도, 때론 먹구름이 가리울지라도 모두의 지붕 위로 아침 해는 늘 저렇게 밝게 떠오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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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맞은 구월 아침, 한국 창원에서 영어 교사를 했었다는 시인의 구월 노래를 읽다.

Simply September
— David Kowalczyk
A world made
more of music
than of flesh.

Sunflowers
ablaze in
the autumn wind.

Memories
set free
by the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