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제일 덥단다. 어제 오후 서두르다 가게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가게에 나가다. 이른 아침 가게 앞 주차장은 밤 사이 차려진 아침 밥상을 즐기는 새들의 잔치 마당이다.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리기 시작했나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마트에는 이리 더운 날에도 눈에 늘 익은 일요일 아침 풍경 그대로다. 내 또래 중늙은이 또는 늙은 할배들이 장바구니 들고 물건 몇 가지 담는 모습들, 나도 이미 그 풍경에 잘 어울리는 소재다.
찌는 일요일, 수술후 회복 중인 아내와 함께 시원한 집에서 꼼작 않고 쉬기로 한다.
모처럼 책읽기 좋은 날, <미국 vs 유럽 – 갈등에 관한 보고서>를 재미있게 읽다. 저자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의 경력에 미 국무부 근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 유럽 운운했지만 아무렴 미국에 치우친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다.
부시 부자와 그 사이에 끼었던 클린턴 시대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역사적 경험들을 되짚거나 내일에 대한 생각들을 펼친 이야기라,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일견 수긍의 고개 짓과 도리도리 거부의 몸짓이 함께 하였다만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어느 쪽에 그리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유지한 노력이 매우 돋보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몇가지 노트들.
<유럽과 미국이 다같이 당면한 과제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새로운 현실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다.>
<영토와 영향력 확대는 미국 역사에서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연찮게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야망은 미국인들의 특성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독립 이래 아닌 독립 이전부터….>
<미국인들은 언제나 국제주위를 지향했지만 이런 국제주의 또한 항상 내셔널리즘의 부산물이었다. 미국은 어떤 행동을 취할 때 그 정당성을 초국가적인 기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따르는 제반 원칙에서 찾았다.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킴으로써 인류 전체의 이익을 향상 시킨다는 점을 수많은 미국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매우 쉽게 믿어 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표현처럼 ‘미국의 대의가 곧 모든 인류의 대의인 것이다.’>
<한마디로 건국의 주역들이 말한 이른바 ‘타인의 견해에 대한 적절한 존중’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이런 점은 언제나 가장 지혜로운 방책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지 근 60년이 지났음에도 프랑스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이런 조크성 이야기를 입에 담고 있다. “사람들은 ‘독일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그럴까?’라고 말한다. 독일이 움직이면 보통 6개월 뒤에는 상젤리제 거리를 행진하고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느끼는 독일에 대한 공포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우스개란다. 그 공포를 누르고 있는 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Kagan의 말이고….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오늘의 일본과 미국을 떠올리기도 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만난 후배가 책정리를 한다고 하여 얻은 책, <미국 vs 유럽 – 갈등에 관한 보고서>로 몹시 더운 날 내 생각을 살찌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