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숲길만 찾아 다니지 말고 꽃길도 좀 걸어 보란 뜻이었는지 모를 일이다만, 아내가 Longwood gardens membership card를 선사했다.

이젠 Longwood garden은 마음만 먹으면 일년 동안 공짜로 드나들 수 있는 내 정원이 된 셈이다.

아내가 교회 가는 시간에 맞추어 나는 내 정원을 걸었다. 집에서 20여분 거리, 드라이브만으로도 쉼을 만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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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쉼을 느끼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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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걷기엔 잘 가꾸어진 꽃길보다 들길과 숲길이 제 격이다. 단풍나무 숲길에 빠지다. 이 길을 아내와 내 아이들과 함께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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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맥주와 protein bar로 땀을 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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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원을 노니는 산책객들 중 젊은이들 보다 노부부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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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내 연식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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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석에 앉아 즐긴 분수쇼는 정원 주인이 누리는 덤일 뿐.

 

유월, 더운 날에

일터의 환경을 바꾼 덕인지 올 여름엔 더위가 매우 더디 찾아 왔다. 스팀 열기와 함께 해야 하는 세탁소 여름을 수십 년  보낸 탓에 내 마른 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올 봄 가게를 이전하며 보일러를 사용하면서도 에어컨이 작동할 수 있도록 꾸몄더니 올 여름 호사를 누리고 있다.

바쁜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잠자리 한 마리 세탁소 카운터 위에서 늦잠에 빠져 있었다. 더위는 게으름을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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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한바탕 소나기가 더위를 식히다.

차마 사진 운운하기엔 부끄러운 유치원 아동이지만 이즈음 깨달은 두 가지.

나는 렌즈를 통해 보고 싶은 것들만 본다는 것과 그나마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은 빛이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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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장인을 기다리는 요양원 앞뜰에서 이어진 깨달음 하나.

삶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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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앞뜰  고목 밑둥은 새 잎을 낳다.

6/ 28/ 19

용사(勇士)

달포 전 일이다.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 깻었다. 어머니가 잠자리에서 일어 나시다 넘어져 머리를 다쳐 병원엘 가야하니 빨리 와 달라는 전화였다.

어머니와 누이는 병원으로 가고, 아버지와 나는 새벽 시간을 함께 했다. 머리가 찢어져 제법 많이 피를 흘리신 상황을 설명하시며 아버지는 울음을 그치지 않으셨다. 나는 차갑게 말했었다. ‘아버지, 지금 우실 연세는 아니짆아요. 행여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한들 아버지가 우시면 안되지!’

다행히 어머니는 머리를 몇 바늘 꿰맨 후 집으로 돌아오셨고, 아버지는 그 날 하루 내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이즈음 없던 일도 만들어 내시고, 조금 전 일과 옛 일을 뒤섞기도 하고, 뻔한 일도 난 모른다고 딱 잡아 떼시기도 한다. 이런 생소한 모습의 어머니와 하루 종일 함께 하시는 아버지에게 난 여전히 차갑게 다가가곤 한다.

지난 달 생신상을 받으신 아버지는 1926년생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소학교 4학년으로 교육은 끝냈고, 일본 탄광 노동과 6.25 전쟁 참전 그리고 다리 한 쪽 저는 상이군인 – 내 기억에 없는 세월 이야기들이 내 기억 속 시절 이야기들 보다 더욱 손에 잡힐 만큼 많이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

당신은 이따금 그렇지 않다고 손을 내젓곤 하시지만 평생 그저 여리고 착하게 살아오신 내 아버지가 영문으로 기록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어제 6월 25일에 받았다.

누구의 도움없이 영문 원고를 쓰시고 Amazon을 통해 스스로 발간하신 <Korean Peninsula and my Experience>다.

아직 안경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시고, 하루에 당근 세 토막 천천히 씹어 즐기시는 튼튼한 치아와 오늘 또 다시 내가 새롭게 할 수 있는 뭘까? 고민하시는 내 아버지.

그렇다. 아버지는 여전히 자랑스런 대한민국 화랑무공훈장이 빛나는 용사다.

용사 앞에 차가운 적 하나 있어야 마땅한 일이고.

Amazon 책 보기

아버지 책표지

과정(過程)

국민학교 몇 학년 때 였던가? 아마도 여름방학을 앞 둔 이 맘 때 쯤이었을게다. 신촌 신영극장 뒷길을 걷다 바라 본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들이 포근한 솜처럼 피어 있었다. 입 헤벌리고 그 하늘을 쳐다보며 걷는데 벌이 내 눈가를 쏘았었다. 그야말로 눈탱이가 밤탱이 되었던 그 여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제 오후 가게 밖 하늘 풍경은 딱 그 때였다. 1960년대 어느 여름 신촌 그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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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 닫고 돌아오는 길, Curtis Mill Park 숲길을 걷다. 새소리 물소리, 길가 강아지풀에 담긴 옛 생각들을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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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 주어야 할 것이 어찌 잡은 물고기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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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치매끼가 더해 가시는 노인들과 이제 막 신혼을 꾸미고 인사차 들린 처조카 내외를 보며  든 생각 하나.

무릇 삶은 놓아 주어야 할 과정의 연속.

결혼 기념일

‘이젠 해방되는 해인가?” 식사 주문을 마친 아내가 던진 말이다.

36년이라! 내가 겪지 않았던 세월을 대변하는 시간을 명시하는 세월. 그저 긴 시간을 표현하는 말. 아내와 함께 한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

만나 눈 번쩍했던 시간까지 따져보니 마흔 한해다.

그래! 이젠 모든 것에서 서로 해방된 관계를 시작할 나이다.

36주년 되는 날, 우리 가게 손님에게 받은 최고의 찬사.

<God continues to bless us through you. Yours is a great work offering such beauty and goodness.>

조촐하게. 해방을 위하여!

어느 하루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엊그제 딸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어제 낮에 내 일터로 전화를 한 장인은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뭔가 좀 이상해. 여기 반란이 일어난 거 같아!.’ 장인이 장기 요양원에서 꼼작 않고 누워 계신지는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엊저녁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귀가 전화 인사를 드리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너 오늘 일 안나갔었니? 아까 너희 집에 들렸더니 네 차가 집 앞에 있더라.’ 어머니 역시 누군가의 도움없이 집을 나서지 못하신지 여러 달 째이다.

장인이나 어머니나 이즈음 정신이 많이 오락가락 하신다. 때 되어 겪는 수순이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도 기분이 크게 오락가락 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연유로 딸 아이에게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다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게 엊그제였다. 모처럼 나선 길에 아들 내외가 함께 했다. ‘올라 가마!’라는 내 말에 딸아이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교회엘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엔 가본 적이 있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대핸 그저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멋진 brunch에 이어진 교회 안내, 예배 후 Brooklyn Bridge 걷기와  인근 상가와 강변 안내 그리고 풍성한 저녁 식탁, 오가는 교통편 까지 딸아이의 준비와 배려는  매우 세심하고 고왔다.

서울내기인 내게 도시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었다. 높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졸음이 자꾸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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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녹아 있는 아름다움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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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 가족이 저녁상을 함께 나눈 곳은 ‘초당골’이었다. 딸아이는 그 ‘초당골’에서 내게 물었었다.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소주 한 잔에 풀어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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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외가 다니는 교회나 네가 다니는 교회 예배 형식과 분위기는 솔직히 아빠 취향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정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 여러가지들을 인정하면서 자유로워지는게 진짜 믿음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일 하루 예배가 일주일 동안 너희들이 사는 일에 기쁨이 된다면 좋겠어. 그런 뜻에서 오늘 참 좋았어.’

흔쾌히 하루를 함께 한 아들과 며느리,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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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웃음은 아내로 부터 이루어졌던 하루를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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