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나 장인이나 아직 현실과 꿈 사이를 이따금 오락가락 하시지만 두 분 모두 계셔야 할 곳에 계서 모처럼 마음이 편하다.
어제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 온 어머니는 ‘얘야, 오이 김치 담궈 줄테니 밥 먹고 가라!’셨다. 아직 밥 두어 술 넘기기도 벅차신 양반이 오이 김치를 잡숫고 싶으셨나 보았다. 엊저녁엔 병원에서 요양시설로 다시 돌아오신 장인 방을 장식할 사진들을 찾아 골랐다.
아침 잠자리에서 뭉개 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평소 어머니의 바램 대로라면 주일인 오늘 아침, 나는 교회에 나가야 마땅할 일이었다만 필라로 향했다.
차량이 꼬리를 이어 달리는 도시 나들이는 내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 내 맘 하나 편하자고 나선 길이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 – 필라델피아 추모/ 기억 공간>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행사에 머리 수 하나라도 채워야 맘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반찬 가게에 들려 오이 소박이 김치와 어머니 입 맛에 맞을 만한 국 몇 가지 사 들고 돌아 오는 길, 내 맘이 참 편했기 때문이다.
이즈음 한국 소식들 가운데 내 관심을 끈 것들 중 하나는 도올 김용옥이 나서 이끄는 일련의 한국현대사 해석이다. 딱히 김용옥선생이 새롭게 꺼낸 목소리는 아니다. 김용옥선생의 목소리로 하여 조금은 더 넓게 ‘그 때 그 시절의 진실’들이 퍼져 나갈 수 있는 오늘은 ‘그 시절을 그저 기억하고 살아 온’ 이들 때문에 맞이하게 된 것 일게다. 그 생각에 이르러 편해진 마음이다.
어머니는 오락가락 하시는 자신의 모습이 아직은 많이 낯 선 모양이다. 나는 ‘엄마, 다 좋아, 괜찮아, 이젠 넘어지지만 않으면 돼!’를 반복한다.
집에서 낮잠은 정말 오랜만이다. 내 방 창 밖에도 어느새 봄이다.
어쩜 내가 사는 오늘이 늘 봄이 아닐까? 감히 역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