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봄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더디 온다. 올 봄도 예외가 아니다. 일력은 3월 24일인데 간밤은 여전히 춥고 길었다.

만 열흘 만에 어머니는 정신이 드셨고 미음 몇 술 넘기셨다. 응급실로 실려 가시고 처음 며칠, 어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었나 싶었다. 의사는 마지막 의료 처방에 대한 가족들의 의견을 구했고, 누나는 그 몫을 내게 맡기려 했다. 나는 그 몫은 아들이 아니라 첫째인 누나 것이라고 양보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머니는 집에 가야만 한다고 우기셨다. 아버지 진지 차려 드려야 한다며… 오늘은 집에 못 가신다는 내게 어머니는 신신 당부하셨다. ‘아버지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라! 넘어지시면 큰 일 나신다!’ 아버지가 혼자 바깥 출입을 하신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갑자기 겨우내 밀린 피로들이 몰려 왔다. 간밤을 병실에서 보낸 탓만이 아니었다. 덕지덕지 마른 피멍들로 무거워진 입술을 달싹이며  아버지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겨주는 피로였다.

30년 생업을 이어 온 자리, 마지막 정리는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가게 자리를 옮기면서 마지막 빗자루질은 내가 하겠다고 맘 먹었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빌렸다.

때때로 삶은 내 뜻과 다른 곳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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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내 일상의 출퇴근 길 72번 도로는 한가했다. 절로 감기는 눈을 치켜 뜨며 아버지에게 향하다가 생각없이 공원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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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더디게 오는 봄을 만나다.

어쩜 모든 기다림은 이미 내 발끝에 닿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 하나.

이미 홀로 되신 장인이나 어머니 누워 계신 며칠 동안 홀로서기가 낯 선 내 아버지가 왠지 뒷전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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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버진데….

무릇 봄은 땅에서 기다림은 맘에서 비롯되나 보다.

아무렴 어머니다.

다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