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갓 태어난 아이부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이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삶엔 뜻이 있다. 하여 모든 삶은 소중하고 귀하다.

팥죽을 끓여보긴 처음이다. 어머니는 팥밥, 팥떡, 팥죽까지 팥을 참 좋아신다. 내친 김에 좋아 하시는 비린 생선도 굽고 우족과 사골을 푹 고았다. 어머니 덕에 아버지와 장인까지 우족탕과 비린 생선과 팥죽 상을 받으셨다.

어머니 계신 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정상이고, 아버지 계신 노인 아파트엔 온통 노인들 뿐이고, 장인 누워 계신 노인 요양원에 가면 기력 쇠한 노인들 세상이다.

모든 삶엔 뜻이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 온 것이지만 이즈음에 들어 그 생각을 많이 곱씹는다.

제 삶에 뜻 있음을 알아야 가족과 이웃들 삶에 뜻을 새길 수 있다. 삶에 공감을 이루는 일이다.

아버지를 잠시 뵙고 나오는 길에 노인 아파트에 먼저 온 봄을 만나다. 바람은 아직 찬데 어느새 4월이다.

DSC04950 DSC04947 DSC04946 DSC04945

DSC04954DSC04957DSC04959

4월을 맞아 분주한 내 참 좋은 벗들이 전하는 소식에 좋은 세상을 그리며, 그저 생각 뿐인 나는 또 부끄럽고 안쓰럽다.

unnamed

엄마와 봄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더디 온다. 올 봄도 예외가 아니다. 일력은 3월 24일인데 간밤은 여전히 춥고 길었다.

만 열흘 만에 어머니는 정신이 드셨고 미음 몇 술 넘기셨다. 응급실로 실려 가시고 처음 며칠, 어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었나 싶었다. 의사는 마지막 의료 처방에 대한 가족들의 의견을 구했고, 누나는 그 몫을 내게 맡기려 했다. 나는 그 몫은 아들이 아니라 첫째인 누나 것이라고 양보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머니는 집에 가야만 한다고 우기셨다. 아버지 진지 차려 드려야 한다며… 오늘은 집에 못 가신다는 내게 어머니는 신신 당부하셨다. ‘아버지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라! 넘어지시면 큰 일 나신다!’ 아버지가 혼자 바깥 출입을 하신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갑자기 겨우내 밀린 피로들이 몰려 왔다. 간밤을 병실에서 보낸 탓만이 아니었다. 덕지덕지 마른 피멍들로 무거워진 입술을 달싹이며  아버지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겨주는 피로였다.

30년 생업을 이어 온 자리, 마지막 정리는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가게 자리를 옮기면서 마지막 빗자루질은 내가 하겠다고 맘 먹었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빌렸다.

때때로 삶은 내 뜻과 다른 곳에서 이어진다.

DSC04929

일요일 오후, 내 일상의 출퇴근 길 72번 도로는 한가했다. 절로 감기는 눈을 치켜 뜨며 아버지에게 향하다가 생각없이 공원 길로 들어섰다.

DSC04890 DSC04893 DSC04898 DSC04899 DSC04900 DSC04902 DSC04903 DSC04909 DSC04910 DSC04911 DSC04919 DSC04924 DSC04930

그 곳에서 더디게 오는 봄을 만나다.

어쩜 모든 기다림은 이미 내 발끝에 닿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 하나.

이미 홀로 되신 장인이나 어머니 누워 계신 며칠 동안 홀로서기가 낯 선 내 아버지가 왠지 뒷전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분위기.

DSC04936

DSC04932

나도 아버진데….

무릇 봄은 땅에서 기다림은 맘에서 비롯되나 보다.

아무렴 어머니다.

다시 봄이다.

사랑 이야기

병문안 온 어느 장로가 어머니께 던진 덕담 하나
‘권사님, 집에서 기다리시는 바깥 어른 생각하시고 빨리 일어 나셔야죠! 권사님이 많이 사랑하시잖아요!’

산소 마스크 안에서 웅얼거리는 어머니 응답
‘사랑? 그거 그냥 편안하게 해 주는거야!’

내 어머니께 처음 들은 사랑 이야기

어머니

언제였을까? 기억을 되짚어 본다, 밤은 길고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을 보낸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사십 년 전 까지는 기억이 명료하다. 한 해 한 해 더듬으며 오십 년 저쪽 세월을 더듬는다.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시더니 거친 호흡을 내 뱉으신다.

육십 년 전을 더듬어 본다, 역시 없다.

어머니는 어느새 다시 편안하신 얼굴로 깊은 잠을 이어 가신다.

어쩌면 어머니와 단 둘이 한 방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오늘이 처음 아닐까?

어머니는 깊은 잠속에서 아흔 두 해 세월을 넘나드실게다.

행여 정신 맑아지셔 병원 의자에서 쪽잠 자는 내 모습 보시면 벌떡 일어나서 재촉하실 게다.

‘이 눔아! 어여 일어나 집에 가자!’

  1. 20. 19

 

어느 아침

가게문을 열고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문득 눈에 들어 온 아침 하늘에 빠졌었다.

DSC04864

DSC04865DSC04866

가게 이사 후 첫날 아침, 먼 길 이사 가는 새떼들이 내 생각을 오래 전 내 젊었던 시절로 데려갔다. 이민(移民)후 정말 멋 모르고 시작한 세탁소, 가게 이름을 지을 때였다. ‘나는 김씨고 당신은 이씨니 그냥 K&L로 가자고…’

DSC04871

DSC04874

그렇게 시작한 세탁소가 내 평생의 업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새 장소로 이전해 첫 날을 맞았다.

솔직히 이제껏 내 맘과 내 뜻대로 이루어진 일이란 별로 없다. 나는 그게 나에 대한  신의 은총이라고 고백하곤 한다.

새 장소에서도 여전할 것이다.

높이 나는 새들도 있고, 낮게 팔랑이며 나는 새들도 있듯이.

DSC04870
DSC04869김가인 나와 이가인 아내가 같은 생각으로 날고 있으므로.

2019년 3월 11일, 참 좋은 아침에

경칩에

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동네 약국 체인점에 있는 사진 현상소에 들렸다. 재미 삼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일여 년 만에 어제 밤 처음 사진 현상 주문을 해 보았다.

내일부터 나흘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새 장소로 이전을 한다. 내가 해야 할 이전 준비들은 거의 끝났고, 장비와 기계 등 큰 이사짐들은 일이 맡겨진 이들의 몫이다.

나는 손님들을 맞는 카운터 공간을 꾸밀 생각으로 사진 현상을 맡겼던 터이다. 내가 찍은 사진 몇 장들과 내가 좋아하는 시 몇 편들을 새긴 판넬로 한 쪽 벽을 장식할 요량이다.

현상되어 나무판에 새겨진 사진들을 찾아와 한참을 들여다 보다 툭 튀어나온 혼잣말, ‘오호 제법인데!’

사진들과 함께 벽을 장식할 시편들을 새긴 판넬들을 찾아 든다. 영역한 이해인님의 시편들과 Thoreau의 생각들, 그리고 내가 참 좋아하는 Shel Silverstein의 관점 (Point Of View)이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나는 이즈음 한국(한반도) 뉴스 또는 한국(한반도)에 대한 뉴스들을 보며 Shel Silverstein의 관점 (Point Of View)을 떠올리곤 한다.

개인 사이의 관계, 집단과 집단과의 관계 나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또는 나라와 개인 집단과 개인, 나라와 집단 등등 모든 관계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Shel Silverstein의 관점은 신(神)의 관점이다.

바로 약자(弱者)의 관점에서 공감하는 능력이 최적화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바로 천국이다.

역사란 사람들이 천천히 정말 천천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그 곳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아닐까?

내 욕심으로 살다 문득 문득 현상된 사진처럼 툭 정신을 차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몹시 추운 경칩(驚蟄)에

DSC00614b DSC03220b DSC04299b DSC04300b DSC04325b DSC04535b

서설瑞雪

얼음비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졸다가 깨다.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싶었는데 그새 생각이 아니라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언제나 좀 호들갑이다. 4에서 7인치 정도의 눈과 얼음비가 내린다고 아침부터 요란을 떨었다.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일기예보에 지친 하루였다.

일기예보는 변덕스런 날씨나 사람들 마음에 비해 비교적 정확한 쪽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예보대로 비가 오다가 눈이 내리고 얼음비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다시 눈이 내리는 밤이다.

가게 이전을 한 주 앞두고 가족들과 손님들을 초대해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눈길에 함께 한 가족들과 오랜 친구가 된 내 가게 손님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DSC04804

함께 하지 못한 딸아이 대신 잔치 사회를 맡은 며늘아이를 넋 놓고 바라보는 아들녀석 만큼 나 또한 아이가 대견스럽다. 눈길에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내게 며늘아이가 물었다. ‘아버님, 저 잘했어요?’

DSC04806

사실 오늘 그 자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위한 자리였다. 그 자리가 한번 있어야 맘이 편한 분들이었기에 장로인 매제의 기도와 함께 형제들이 함께 했다. 모두 참 고맙다.

DSC04809

DSC04811

DSC04821

DSC04823

그리고 눈길을 마다 않고 함께 한 내 손님이자 이젠 모두 머리에 허연 눈들을 이고 사는 인생의 길동무들이 참 고맙다. 이런 길동무들을 이어주는 이는 언제나 내 아내다.

DSC04834

DSC04838

DSC04840

DSC04842DSC04848

DSC04850

잔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미끄러웠다.

DSC04852

아들 내외가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부모님에게 감사 전화를 드린 후 밀려든 잠에 그렇게 잠시 빠졌었던 모양이다.

아버님은 서설瑞雪이라고 하셨다.

무릇 세상 일이란 받아 느끼는 사람의 몫일 터이니.

하여 서설瑞雪이다.

DSC04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