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1.

얼마 전 우리 마을 한인회 봉사하는 이들에게서 부탁 메일을 받았다. 그들의 부탁이란 한인회 회칙을 새로 정비해 개정하려 하는데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인회 일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영어가 주언어인 관계로 영문본을 먼저 만들었고, 그를 번역해  한글본을 만들려고 하는데 특히 그 부분에 대한 검토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이십 여 년 전 내가 한인회 봉사를 할 때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는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이젠 그게 바뀐 것이다. 그렇게 한인 사회가 바뀐 것일 게다. 그 바뀜이 참 좋다.

나는 그 부탁에 감사하다는 말을 붙여 거의 내 의견을 덧붙이지 않은 응답으로 대신했다.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기까지 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견하다고 말할 만큼 늙지는 않았고, 그들과 함께 할 만큼 젊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란 박수 치며 말없이 쫓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2.

가게 이전이 코 앞에 다가오자 노 부모님들이 목사님 모시고 개업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거창하게 기복(祈福) 의식에 대한 거부를 내세울 일도 아니었다. 남들은 은퇴를 하는 나이에 가게 옮긴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 남사스럽기도 하거니와 솔직히 의식에 대한 내 심한 거부증도 한 몫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네들에 대한 미안함은 끝내 가시질 않았다.

그러다 손님 몇 몇이 농으로 우리 부부에게 던진 말, ‘새 장소로 가는데 잔치 안 해?라는 말’이 꽂혀 진담으로 받았다.

하여 가게 손님들 몇 몇에게 조촐히 신장개업 잔치 자리를 열면 오겠느냐고 물었더니  좋다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음식 몇 가지 차려 놓고 단골 손님들 몇 십 명 초대해 잔치를 하겠노라는 말에 노 부모님들 얼굴 환해 지셨다.

변화가 두루 모든 이들에게 맞는 일이란 참 어렵다.

철들 나이

시간 또는 숫자란 때론 참으로 뜻 없다. 숫자로 일컬어지는 나이 또는 2019년 모월 모일로 표시되는 시간은 언제든 나와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봄이거니 했는데 눈이 많이 내린 날, 느닷없이 철든 내 생각이다. 허긴 사회 통념상 노인 반열에 이미 올랐건만 그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으니 철없기는 참 여전하였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이 자리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내 평생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인 생각들이다.

내 아이들을 낳고 키워온 삼십 년을 함께 해 온 가게를 옮기는 준비를 하며 맞는 눈손님에 참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하여 일찌감치 가게 문닫고 집에 돌아 와 눈 치우며 눈을 느끼다. 시간 또는 숫자를 세며.

역시… 난 아직 완벽히 철들 나이는 아닌가 보다.DSC0478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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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

아직 차가운 영하의 날씨. 일기예보는 또 한차례 눈 소식. 가게 문 여는 아침, 이미 봄 내음 맡은 새떼들은 북향. 때론 아주 뻔한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능력이 새들 보다도 못하다. –  2/ 1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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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이젠 밤운전은 엄두를 못내겠다는 서선생님은 나보다 딱 열살이 많다.

그가 한 십여 년 전에 내게 한 말이다. “내 나이 돼 보라구! 그 전엔 큰 일 날 일도 별거 아냐… 움직이기 귀찮아서 안 움직여도 세상 큰 일 나지 않는다구.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적당한 게으름을 받아 들이는 걸꺼야!”

눈 내리는 아침, 가게 나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움직이기가 싫었다. 나갈 생각 않고 창문 밖 눈 내리는 풍경만 바라보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당신도 이젠 늙나보다.”

  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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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에

새 달부터 새 장소에서 영업을 한다는 이전 안내문을 붙이자 “내가 뭘 도와줄까?’ 묻는 이들이 많다. 직장 일을 쉬더라도 이사 일을 돕겠다는 젊은이도 있고, 교회와 동네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으겠다는 이도 있다. 더러는 이전 비용을 염려하며 전보다 더 많은 세탁물을 가져오는 것으로 돕겠다는 이들도 있다.

이즈음 이런 저런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주는 고마운 얼굴들 떠올리며 주일 편지를 쓰다.

2-10

지난 주 어느 날인가 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제 아빠 손을 잡고 세탁소에 들어 섰답니다. 아이는 무언가에 아주 토라진 듯 입을 삐죽히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허락을 받고 아이에게 막대사탕 하나를 쥐어 주었답니다. 아이의 얼굴은 이내 세상 다 가진 듯 환하게 바뀌었답니다. 그리곤 그 환한 얼굴로 컨베이어에 걸린 옷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런 아이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넋이 나간 저도 잠시 아이가 되었었답니다. 딱 그 꼬마 아이 쯤 나이였을 때 제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잠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제 생각엔 지난 시간들이 마구 스쳐 지나갔답니다. 잠에 빠진 어린 저를 업고 걸으셨던 아버지는 이제 아흔 중반 나이에 이르셨습니다.

유년이 지나 소년을 거쳐 청년이 되어가며 저는 꿈을 꾸었었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었답니다. 아직 그런 꿈을 버리지 못했을 때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 시절 아내의 꿈은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는 것이었답니다.

그리곤 어찌어찌하여 우리 부부는 델라웨어 뉴왁에서 세탁소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딱 30년 전인 1990년 7월이었습니다. 제 성씨인 Kim과 아내의 성씨인 Lee의 첫 글자를 묶어 K&L Cleaners라고 간판을 걸었었답니다.

그 날 밤, 막대사탕 하나로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한 얼굴이었던 아이를 생각하며 저는 꿈을 꾸었답니다. 시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고, 그저 살아가면서 느끼고 고백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꿈을 꾸었답니다.

그것이 비록 큰 욕심일지언정 꿈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세탁소에서.

욕심에

얼굴 가득 찡그린 마음 담은 채
제 애비 손 잡고 내 가게 들어 선 꼬마 아이
막대사탕 하나 쥐어 주니
세상 다 가진 얼굴이다

그 모습에 홀려 꿈을 꾼다

먼 훗날 꼬마 아이
이 도시의 거리와 풍경들
가족과 이웃들
사진첩 넘기 듯 옛일 생각할 때
비록 얼핏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지라도
사람 좋은 얼굴 세탁쟁이로 남을 수 있다면

때론 욕심이어도
꿈은 아름다울 수 있으므로.


One day last week, a child who looked to be four or five years old held his dad’s hand and walked into the cleaners. He pouted his lips, maybe because he was upset about something. With his dad’s permission, I slipped a lollipop into his hand. His face softened into a grin, as if it meant the world to him. Then, with a beaming smile, he looked at the clothes hanging on the moving conveyers with bewitched eyes.

While I was watching the boy, old memories led me to become a child for a moment. That was because he brought to me an old memory that I had fallen into sleep on my father’s back when I was about his age.

Throughout the afternoon that day, a flood of thoughts and memories of the past coursed through my mind. My father, who walked with me on his back, is in his mid-nineties now.

When I became a young man, after going through my infanthood and adolescent period, I had a dream. It was a dream of becoming a poet. Before I gave up the dream, I met my wife. At that time, she dreamed of living her life in singing and dancing.

Then, one thing led to another, and my wife and I began to run the cleaners in Newark, Delaware. It was in July 1990. I named it “K&L Cleaners” after the first letters of my last name “Kim” and my wife’s last name “Lee.”

That night, thinking about the boy who became happy with a lollipop, I dreamed about the thought that writing poems, singing and dancing are not big deals, but they are simply to feel and to express one’s life.

And the thought that dreams are beautiful, though they may be big greed.

From your cleaners.

My Greed

With a face filled with a frowning mind
A little boy who walked into my store holding dad’s hand,
When I slipped a lollipop into his hand,
Changed his face as if he owned the world.

I’m dreaming enchanted by the changes in his face

Some day in the distant future, when the little boy
Will think back, as if leafing through an old picture album, on the past times
Streets and scenery of this town, and
Families and neighbors,
Even as a part of the passing background,
I’d have been remembered as a friendly-looking cleaner.

Sometimes, though greedy,
Dreams can be beauti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