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에 쉬는 날 저녁, 가게에 나갔었다. 날씨 온도 9도에 체감온도 -11도면 섭씨로 영하 12도에 체감온도 영하 24도, 경험상 세탁소 보일러가 얼기 십상인 터라 보일러를 켜 놓고 돌아오는 길, 전에 없이 큰 보름달이 먹구름을 타고 놀았다.
까닭없이 긴 밤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책장을 넘기다가 눈에 꽂힌 대목을 곱씹다.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똑똑하게 만드는 여러 인지 능력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 중략 –
이런 능력들이 유해하게 조합될 때, 위험한 이데올로기가 얼마든지 분출한다. 누군가 어떤 집단을 악마화하거나 비인간화한 뒤, 그들만 제거하면 무한한 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구축할 수 있다.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한 줌의 추종자들은 불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으로 그 발상을 퍼뜨린다.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발상에 휘둘리거나, 일신의 위협을 느껴 별수 없이 지지한다. 회의주의자들은 침묵을 강요 당하거나 고립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의 논리에 따르기 마련이라, 내면의 현명한 판단에 위배되는 계획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하나 있다. 바로 열린사회이다.>
치료약이 없는 것은 비단 이데올로기 뿐만이 아닐게다. 일테면 신앙이나 자잘한 일상의 인간 관계에 이르기까지 치료약이 없기는 매양 한가지다.
다만, 천천히 천천히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사람들은 열린사회로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 그것이 역사일 터.
갇힌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앞서갈 터이고.
때론 쳇바퀴 도는 세상처럼 보여도 사람사는 세상은 늘 어제보다는 조금은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지? … !
창문 밖 나무가지 우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