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마존에서 구입한 전기밥솥은 우리 부부에게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생김새도 앙증맞아 마치 도시락같이 생긴 녀석은 우리 부부 한 끼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넉넉한 숭늉도 제공한다. 가격은 단돈 23달러.
이제 겨우 평소 모습에 가까워 지신 장인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 뿐이란다. 장인이 누워 계신 곳은 자그마치 Genesis Healthcare이다. 이름하여 태초의 낙원을 누리는 곳이다. 비록 낮과 밤, 한국과 미국을 헷갈려 하시곤 하시지만, 며칠 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신 장인은 요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모두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란다.
장인이 병원에서 나와 처음 계시던 곳도 내 집과 가까운 같은 회사 Genesis 요양원이었다. 우리 부부가 일터로 오가는 길목에 있거니와 집에서 채 오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어서 선택한 곳이었다. 시설이나 분위기는 그야말로 호텔급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만족했었다. 환자들을 비롯한 시설의 주요 종사자들은 거의 Caucasian, 왈 백인들이었다. 시설 종사자들은 매우 친절했다. 그러나 그 친절함은 매우 사무적이었고 그들이 돌아설 땐 웬지 싸한 느낌이 들곤 했다.
느낌처럼 장인은 그 곳에서 며칠 계시다가 다시 응급환자가 되어 병원으로 되돌아 갔었다.
정신은 여전히 오락가락하셨지만 치료 목적은 달성되었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또 다시 요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이미 계셨던, 집에서 가까운 Genesis Healthcare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 곳은 여유 공간이 없었다.
만 하루를 기다린 후, 같은 회사지만 다운 타운에 있는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시설은 전에 있던 곳과 거의 엇비슷했으나, 환자들과 주요 종사자들은 거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곧 흑인들 일색이었다. 그 곳은 뭔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였는데 그게 내겐 참 익숙했다.
그리고 오늘, 비교적 말짱하신 장인은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 뿐’이란다.
10인용 압력 보온 밥솥이 우리 부부에게 결코 사치일 수는 없다. 다만 단돈 23달러짜리 2인용 밥솥은 오늘 우리 부부에겐 그저 참 적합할 뿐이다.
장인에겐 지금의 Genesis Healthcare가 천국이다. 그가 그렇게 느낄 수만 있다면….
*** 장인이 병원에 계실 때 일이다. 얼굴 까만 젊은 간호원에게 아내가 말했었다. ‘내 며늘아이도 아프리칸 어메리칸이란다.’ 예쁘장한 간호원은 웃으며 아내에게 답했었다. ‘난 아프리칸 아프리칸이예요.’ 그녀가 환한 웃음을 안고 돌아선 후 우리 부부가 허하게 웃으며 한 말, ‘우리가 코리안 코리안’이라고 한 적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