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나는 손님들은 종종 ‘주말 잘 지냈니?’, ‘주말에 뭐했니?’라고 묻는다. 이런 물음에 이즈음 내 대답은 ‘응,걸었어!’이다. 이따금 내 몸보다 족히 두 배가 넘는 이들은 말한다. ‘아니 너처럼 삐쩍 마른 애가 왜 걸어?’ 이럴 때면 나는 그저 빙그레 웃는다. 운동이 아니라 걸으며 나를 만나는 즐거움을 딱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책의 즐거움을 깨달은 것은 최근 일이다. 내 삶이 산책길 같았으면…하는 소망을 품은 것도 물론 근자에 이르러서 이다.
산책길 같은 내 삶에서 만난 이들이 있다. 필라 세사모 벗들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만난 이들이니 채 오 년이 안되었다. 더러는 그 이전부터 연을 이어온 이들도 있지만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 그들은 그 이전과 달랐다.
어제, 그 벗들과 새해 맞이를 함께 했다. 족히 다섯 시간에 걸친 이야기 마당이었는데 내게는 모처럼 큰 공부방이었다.
행사 전체 진행을 맡은 권오달님은 매사 진중하지만 언제나 여유로움을 풍긴다. 어제 행사를 진행하는 그의 머리 속엔 이미 필라세사모의 상반기 계획들이 자리잡았을 터였다.
자칭 ‘그저 평범한 나같은 아줌마들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현옥님은 필라세사모에서 그 ‘평범한 아줌마의 위력’을 보이는 이다. 그가 정리해 낸 필라세사모가 해 온 일들을 보고 들으며 든 생각 하나. ‘참 꾸준했구나!’
자칭 ‘공돌이’인 김태형님은 엉터리 문과 출신인 내게 부끄러움을 안기곤 한다. 다만 마이크를 잡으면 시간 조절이 잘 안되는 흠이 있긴 한데,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참 좋았다. 지난 이년 여 짧은 시간동안 벌어졌던 그 엄청난 일들을 쉽게 잊고만 나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에워 싼 운기에 대한 설명은 그저 덤이었을 뿐.
기운으로 말하자면 모임 장소로 흔쾌히 집을 내준 안주인의 장구소리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와 가락이 으뜸이었다.
지난 백년을 돌아보며 한반도의 새해를 바라보는 이선아님이 던진 화두는 민중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3.1 운동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공동체가 걸어 온 진보적 걸음의 주인이자 추동력은 바로 밑바닥 민중이다라고 받았다. 그런 뜻으로 그가 던진 그 시대의 만세꾼으로서의 필라세사모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눈동작, 손동작에서 머리 회전까지 느려지기 시작한 내게, 이른바 미디어의 변화는 따라잡을 수 없는 세태 변화이다. 비단 나이 탓으로 느려진 나같은 세대 뿐만 아니라 제 고집만으로 좁은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던진 이호정님의 ‘뉴스를 읽는 혜안 찾기’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모두 유효하다. 어쩜 우리들의 삶이란 귀 쫑긋 세워 참과 거짓 사이 선택을 이어가는 일 아닐까?
어제 유일한 초대손님 정성호님은 ‘촛불시위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첬나?’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졌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조금 삐딱한 마음이 되어 기도를 했다. 이 땅에서 공부하거나 잠시 머무르다 다시 한반도로 돌아가는 이른바 지식인들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자리에서 함께하는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기를….
어제 공부방은 시종 열공 분위기였고
이어진 그룹 토의는 진지하였다.
그리고 그 시간 손님들을 위한 밥상 준비에 홀로 애쓰는 안주인에게서 그 순간의 민(民)을 보다. 집 주인 장석근님은 평소 쉽게 드러나지 않는 필라세사모의 든든한 뒷배다.
어제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이종국님. 긴급한 가정사로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나간 그가 전해 온 사진 한장.
공감, 참여, 연대에 앞장 선 오늘의 만세꾼!